책임총리는 대통령제 틀 안에서 대통령 권한 중 내치를 총리에게 넘기는 수준인 반면 거국내각은 특정 정당이나 정파에 속하지 않고 야당과 권력을 나눠 갖는 사실상의 ‘여야 공동정부’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는 전시 등 국가비상 상황에서 구성된다. 여당이 이날 거국내각을 선택한 것은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큰 만큼 여론 눈높이에 맞춘 파격적인 수습책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거국내각에선 책임총리가 국정운영의 중심축이 될 전망이다. 이번 사태로 리더십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운영 능력을 상실함에 따라 국무총리가 인사와 정책 등 내치의 실권을 쥐고 진두지휘할 것으로 보인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장기화되고 있는 리더십 공백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정파를 넘어서는 협치의 리더십, 협치형 총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여당 내부에선 박 대통령·여당과 소통하며 정부를 장악할 수 있는 여당 인사가 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묵묵부답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오른쪽)가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서 긴급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뒤 허탈한 표정으로 당사를 나서고 있다. 이날 최고위에선 박근혜 대통령에게 거국내각 구성을 요구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
신율 명지대 교수는 “책임총리제든, 거국중립내각이든 이름의 차이일 뿐 결국 박 대통령이 국정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의미로, 당장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중립내각 구성은 민심이반의 속도와 시간의 문제로, 박 대통령 선택의 문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민심수습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판단할 경우 박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반면 “여당이 제시한 방안인 만큼 검토하는 시늉은 하겠지만, 박 대통령이 완전히 국정에서 손을 뗀다는 것은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고 회의적으로 내다봤다. 대통령제를 채택한 나라에서 엄밀한 의미의 거국중립내각 구성은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당에선 이정현 대표 퇴진과 비상대책위 구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청와대 코드 맞추기로 일관해온 현 지도부로는 실추된 당의 신뢰를 회복하고 등을 돌린 민심을 추스르기에 역부족이란 지적이다. 당의 전면 쇄신 없이는 내년 12월 대선에서 필패할 것이란 위기감도 나온다. 정병국 의원은 “이 대표는 대통령의 정무수석과 홍보수석도 했던 최측근이 아니었느냐”며 “그런 인식을 가지고 대통령 보좌를 했기 때문에 결과론적으로 이런 결과가 온 것”이라고 이 대표 책임론을 제기했다.
남상훈·홍주형 기자 nsh21@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