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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장롱 깊은 곳에서 외투를 찾아 꺼내 입게 된다. 추위는 서리와 함께 온다. 서리는 동결점 이하에서 수증기가 지표나 물체 표면에 가라앉아 달라붙으면서 만들어진 아주 얇은 얼음 결정이다. 맑고 바람 없는 밤에 수증기가 물을 거치지 않고 바로 얼음으로 변하는 승화(昇華) 과정에서 생성된다. 서리는 겨울을 알리는 자연의 신호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처음으로 내리는 서리를 첫서리라 한다. 전국 곳곳에서 첫서리가 관측되고 있다. 산간 지역은 첫서리가 빠르고 남해안·동해안 등 해안 지역은 늦다. 서리는 다른 기상 현상과 달리 전체 서리 일수보다 첫서리와 마지막 서리가 더 큰 의미를 지닌다. 마지막 서리와 첫서리 사이의 무상(無霜) 기간에만 농작물의 생육이 가능하다. 첫서리는 농부에게 농사가 끝났음을 알려준다.

서리가 생길 때 식물의 잎 등 세포조직이 얼어붙어 손상되는데, 농작물이 피해를 입는 것을 상해(霜害)라 한다. 찬 공기가 흐르는 것처럼 상해가 좁고 길게 발생하는 지역을 상도(霜道)라 하고, 냉기가 모여 상해를 일으키기 쉬운 움푹 파인 땅을 상혈(霜穴)이라 한다. 서리꽃이란 말도 있다. 추위로 식물 줄기 안이 깨지거나 갈라질 때 물이 빠져나오면서 꽃의 형태로 언 것이다.

추사 김정희는 세도가 안동김씨의 일원인 김병학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런 말을 한다. “하늘에 기러기 날고 첫서리가 내리는 데다 또 국화철을 만나게 되니, 얼마 전 같은 열기와 번뇌를 생각하면 오늘날 이 서늘바람이 불어줄 줄을 뉘라서 예측했겠습니까. 천기(天機)의 돌고 돎이 이와 같은가 봅니다.” 유교 경전인 ‘주역’에는 “이상견빙지(履霜堅氷至)”라는 구절이 있다. 서리가 밟히면 장차 단단한 얼음이 어는 시절이 온다는 뜻이다.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그 조짐이 나타남을 비유한 말로 쓰인다. 자연의 변화는 이처럼 예측 가능하다. 부지런한 농부는 적기에 이런 변화에 대처할 수 있다.

첫서리를 보면서 계절의 순환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철칙임을 깨닫는다. 이 당연한 이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어제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두한 최순실씨를 떠올리게 된다.

박완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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