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대기업 줄소환은 2003년부터 이듬해 봄까지 이어진 대선자금 수사 이후 12년 만의 일이다. 단기간에 서둘러 모금한 데 비추어 한류 확산과 체육인재 육성이라는 재단 설립 취지에 공감해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기금을 낸 기업은 극소수일 것이다. 모금을 주도한 전경련 이승철 부회장도 처음엔 ‘기업의 자발적 모금’이라고 했다가 검찰 조사에선 ‘안 전 수석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고 한다.
이 돈만 문제 되는 게 아니다. 삼성은 승마선수 육성을 명분으로 최씨의 독일 내 회사 비덱스포츠에 35억원을 건넸는데, 돈은 최씨 딸 정유라씨의 말을 사는 데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K스포츠재단 회의록에 따르면 지난 2월 당시 경제수석이던 안 전 수석이 지켜보는 가운데 재단 측이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과 70억원 추가 지원 문제를 논의했으나 부영이 ‘세무조사 무마’ 조건을 내걸어 무산됐다고 한다. 은밀히 돈과 특혜를 주고받으려 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정치권 관련 금품수수 사건이 터질 때마다 기업들은 강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응했다고 하지만, 일정한 대가를 챙기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권이 이런저런 명분으로 기업에서 돈을 거둬들이고 기업은 이권이나 특혜를 반대급부로 챙기는 것을 정경유착이라고 한다. 우리 경제를 뿌리부터 썩게 해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인이다. 이참에 정경유착의 고리를 반드시 끊어야 한다. 정부와 기업 모두 과거 행태를 반성하고, 약탈적 준조세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강력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시급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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