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지철 경호실장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최순실씨의 아버지 최태민씨에 대한 부정적인 보고를 했다고 한다. 중앙정보부와 서울지검 특수부도 최씨의 뒤를 캤다.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근령·지만씨는 1990년 8월 노태우 대통령에게 최태민씨의 전횡을 고발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조치하려고 했으나 미봉에 그쳤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또다시 시끄러웠다. 이명박 후보 측은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경우 최씨 일가에 의한 국정농단 개연성’을 경고했다. 그러나 경쟁자 깎아내리기로 치부됐다. 원조친박 전여옥 전 의원도 경고음을 울렸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과 가까웠던 원로인사의 말이라며 전했다. ‘이 나라 대통령은 박근혜가 아닐 거요. 정윤회는 비서실장을, 최순실은 부속실장이 돼서 국정을 갖고 놀 것이 분명해요.’ 하지만 팽당한 정치인의 불만으로 간주됐다.
세계일보가 2014년 보도한 ‘정윤회·십상시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기사는 경보음의 결정판이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찌라시 보도”라고 했고, 청와대 비서들은 세계일보 기자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해 재갈을 물리려 했다. 박관천 경정이 “권력서열 1위는 최순실”이라고 경고했지만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은 여러 군데서 이런 말을 들었다. 정치권은 1년 전 검찰수사만 제대로 이뤄졌어도 나라꼴이 이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통탄하고 있다.
TV조선이 지난 7월 미르재단 모금에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이 개입했다고 보도했을 때도 청와대는 사태의 화급성을 깨닫지 못했다.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을 비리 언론인으로 날리고, 추가 보도가 나오지 않게 하는 데 급급했다. TV조선의 최순실씨 영상 보도를 3개월 정도 늦추는 데 그쳤다.
최씨의 국정농단 사건도 하인리히 법칙이 적용된다.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수많은 징후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원칙이다.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은 “여러 번 적신호가 있었다. 뭔가 사고가 나겠다는 예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눈덩이를 산사태로 만든 것은 대통령이다.
한용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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