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최측 추산 20만 인파가 서울 한복판을 행진하는 동안 종로구 종로3가 서울극장 인근 포장마차는 대부분 빈 자리투성이였다. 그러나 포장마차 상인들은 묵묵히 손님 맞을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상인 김모(53·여)씨는 “문 닫을 수가 없어서 오늘 영업은 하고 있지만 한국사람이라면 마음은 다 똑같지 않겠냐”며 웃어보였다.
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정권 퇴진`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행진하고 있다. |
‘최순실 게이트’ 관련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한 이후 서울 도심에서 두 번째로 열린 대규모 집회(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2차 범국민행동)에는 남녀노소는 물론 노동자나 예술인, 종교인 등 각계각층의 시민이 가리지 않고 모여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 촛불을 높이 들고 행진했다.
당초 집회를 앞두고 주최측은 5만명, 경찰은 2만명 정도를 예상했지만 오후 6시쯤 행진이 시작된 이후 합류하는 시민이 계속 늘어 주최측 추산 20만명, 경찰 추산 4만5000명까지 급증했다. 대규모 인원이었지만 큰 사건사고는 발생하지 않았고, 쓰레기를 스스로 정리하거나 대열을 맞춰 행진하는 등 시민의식이 돋보였다.
시민들은 광화문광장을 출발해 종로 3가를 거쳐 을지로, 시청광장 등을 거쳐 약 1시간 30분간 3.7㎞ 정도를 행진했다. 행진이 진행되며 합류하는 시민은 계속 늘었다. 촛불을 움켜쥐고 행진하는 시민, 피켓을 펼치는 시민, 스마트폰에 구호를 띄워 흔드는 시민 등 모습은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목소리는 같았다. 회사원 장모(31)씨는 “주로 뉴스를 통해 상황을 접했는데 오늘 나와보니 아무래도 대통령 지지율이 5%보다 더 떨어질 것 같다”며 놀라워 했다.
특히 이번 시위에는 가족 단위로 참가한 시민이나 10대나 20대 등 젊은 참여자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이영희(65·여)씨는 “세월호 참사 때에도 광화문에 나왔었는데 그때보다 확실히 교복 입은 학생도 그렇고 젊은 사람들이 많이 늘어난 느낌”이라고 말했다.
초등학생 자녀의 손을 잡고 일가족이 행진하거나 유모차를 끈 젊은 부부의 모습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아내와 함께 광화문광장을 찾은 안현재(38)씨는 “애가 걱정이 되지만 헌법이 무시되고 국정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마당에 부끄럽지 않고 싶고, 행동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라며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을지로를 행진하던 윤장현(43)씨는 “현 시국에 대해 하나하나 제대로 설명해주는 것도 좋지만 직접 나와 역사의 현장을 보고 체험하는 것도 의미가 크다고 생각해 나왔다”라며 초등학생인 두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정권 퇴진` 집회에 가족 단위로 참여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
시위를 지켜보던 미국인 제임스(32)는 “미국 같으면 이런 상황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 온갖 의혹에 대해 해명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답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거나 더 큰 문제가 있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까”라고 말했다.
경찰은 전날 ‘도심 교통 흐름을 심하게 저해할 수 있다’며 집회 주최 측에 행진금지를 통보했지만, 이날 법원이 경찰의 결정에 제동을 걸면서 시민들의 행진이 가능해졌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경찰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220개 중대 1만7600명의 경비병력을 투입했다.
김준영·이복진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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