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권한 이양 뜻 밝혀
정치 대화의 장 열어야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으로 보름째 국가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지만 사태 수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광옥 청와대 비서실장은 어제 국회를 찾아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대표 회담의 조속한 성사를 요청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김병준 총리 지명 철회와 대통령 2선 후퇴 선언 등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한 비서실장 면담을 거부했고, 국민의당은 선(先) 총리 지명 철회 및 대통령 탈당을 요구했다.
청와대는 야당이 요구하는 김 총리 지명 철회 문제를 포함해 모든 의제를 회담 테이블에 올려놓고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한 비서실장은 “총리 지명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한다”고 했다. 김 총리 내정자도 어제 “여·야·청이 합의를 봐서 좋은 총리 후보를 내면 저의 존재는 없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자진 사퇴하지는 않겠지만 대통령과 여야가 새 총리 후보 추천에 합의하면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두 차례 대국민사과에도 심각한 국정 혼선을 빚는 가장 큰 책임은 대통령에 있지만 정치적 대화가 실종된 현실은 유감이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끌기에는 국정 공백의 후유증이 크다. 당장 미국에서는 차기 지도자를 뽑는 선거가 진행되고 북한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박 대통령은 어제 천주교·기독교 원로들을 만났는데, 이들이 전하는 시중 여론은 지난 주말 전국 각지에서 울려퍼진 민심과 다르지 않다. 이에 호응하는 행동을 보여줄 때다. 청와대 측은 “김 내정자 말대로 책임총리 권한을 부여한다는 데 이론이 없다”고 하지만 대통령의 ‘육성’이 없는 한 야당은 물론 국민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대리인을 내세우지 말고 대통령이 직접 새 총리에 실질적인 내정 권한을 보장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야 한다.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가 요구한 탈당 문제도 거국중립내각 취지를 살리는 차원에서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리더십이 무너진 상황에서 야당의 역할과 책임 또한 작지 않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정의당 심상정 상임대표는 내일 야3당 대표회담을 갖고 이번 사태의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키로 했다. 이미 무력화한 대통령을 압박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문재인 전 대표에게 “하야는 성급한 얘기”라며 국정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한 원로들의 고언은 새길 만하다. 권한이양 문제를 놓고 대통령과 담판을 지은 뒤 최종 결정해도 늦지 않는다. 대규모 집회가 예고된 이번 주말 전에 정치적 수습책을 만들어내는 게 지금 대한민국을 이끄는 정치 리더들이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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