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독일에 소재한 컨설팅회사 ‘코레스포츠’에 35억원을 지원했다. 코레스포츠의 바뀐 이름은 최씨 모녀 소유인 비덱스포츠다. 지원금의 총액 규모는 53개 기업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낸 출연금에 비하면 크지 않다. 그럼에도 어제 압수수색은 재계를 얼어붙게 하고 있다. 비탈길의 눈덩이가 구르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검찰은 앞서 700억원대 출연금을 낸 53개 기업을 대상으로 전수 조사를 벌이기로 했고, 대기업 총수들도 조사할 수 있다고 했다. 내심 떨지 않을 기업이 드물 것이다.
기업 동정론을 경계하는 여론이 엄존한다. 일방적 피해자로 봐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일리가 없지 않다. 그럼에도 검찰은 유념할 것이 있다. ‘최순실 게이트’에서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은 근본 책임이 박근혜 대통령과 그 측근들에게 있다는 점을 강력히 시사한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하루아침에 평창 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CJ그룹 이미경 부회장에게 퇴진 압박을 가할 정도로 권력의 갑질 행각이 무분별하게 저질러졌다. 한진해운의 공중분해, SKT·CJ헬로비전의 합병 무산 경위도 다시 살펴봐야 할 정도다. 박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 7명과 독대해 자금 모금을 독려한 정황도 있다.
출연 기업들은 무소불위의 갑질 행태에 눈치 보기에만 급급했을 것이다. 갑을관계 폐해가 가장 나쁘게 표출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수모를 겪고 갈취를 당한 기업들을 상대로 이번에는 검찰이 나서서 형식논리의 잣대를 들이대며 과도한 압박을 가한다면 기업인들은 수긍하고 반성하기는커녕 ‘이러려고 기업을 했나’ 하는 자괴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국정농단 의혹을 명쾌하게 규명하는 것은 시대적 과제다. 검찰은 당연히 힘을 내야 한다. 그러나 옥석을 가리지 않고 본말을 살피지 못하는 사정한파는 부작용과 역기능이 크다. 정교한 수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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