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조언도 대개는 빛 좋은 개살구에 그친다. 왜? 정작 실천은 쉽지 않아서다. 음악애호가로 유명했던 코스톨라니는 1937년 바그너의 악극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가 파리에서 공연될 때 주식 전량을 처분했다. 주식시세가 계속 어른거려 머리가 복잡했기 때문이다. 급기야 “음악에 몰두하는 데 방해가 된다면 주식이며 돈이며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 것이다. 코스톨라니 자신도 몇 년간 푹 잘 경지에 도달하기는커녕 매일 노심초사했다는 방증이다.
미국의 대니얼 카너먼 프린스턴대 명예교수가 “노후자금은 넣어 두고 잊어버려라”라고 조언했다. 노후자금은 ‘없는 돈’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발간된 ‘은퇴 리포트’에 적시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3인의 조언 중 가장 명쾌하다. 귀에 쏙 들어온다. 흡사 코스톨라니의 조언처럼. 하지만 뜬구름 잡는 감도 없지 않다. 뭔가를 넣어 두고 잊어버리려면 우선 지금 당장 자금 여유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잊어버릴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세상도 그렇지만 나이 들어가는 세대의 삶도 사뭇 어수선하다. 가까운 일본에선 ‘하류(下流) 노인’이란 유행어가 떠돈다. 고령층이 일부러 편의점 절도 등 가벼운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갇히는 현상도 포착된다. 감방에 가면 의식주가 해결되고 신병 치료도 가능해서다.
대한민국은 어떤가. 노인 빈곤율이 50%에 육박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4배에 달한다. 크게 다를 리 없다. ‘최순실 게이트’니 뭐니 하는 세파도 고약하다.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긴 노후가 영 편치 않다. 카너먼의 조언이 안팎으로 답답한 사회에 먹힐 턱이 없다. 차라리 ‘귀 막고, 눈 감자’는 식의 조언이 현실적으로 훨씬 더 유효할지도 모른다.
이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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