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자의 국정농단 사태를 접하고서 2500년 전 공자의 혜안에 무릎을 쳤다. 박근혜 대통령을 떠받치는 국민의 지지율은 이미 5%로 곤두박질친 상태다. 대통령을 향한 신뢰가 사상 최저치로 가라앉은 것이다. 급기야 국민은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며 촛불을 들었다. 권력은 천길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대통령이 재임 중에 의욕적으로 추진한 병(안보)과 식(경제)조차도 종국엔 그의 보호막이 되어주지 못했다.
누구보다 신뢰를 중시하던 박 대통령이 가장 나쁜 신뢰의 성적표를 받아든 것은 아이러니다. 그는 대통령 후보 시절에 “의리가 없으면 인간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측근의 배신으로 부친을 잃은 과거의 트라우마가 작용한 탓이 아마 클 것이다.
그토록 의리를 갈구한 대통령이었지만 정작 의리의 참뜻은 깨닫지 못했다. 의리의 사전적인 의미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일컫는다. 아직 그 도리의 지향점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이 토해낸 사자후를 들어보라. “무릇 장수 된 자의 의리는 충(忠)을 좇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일전에 “나라가 잘되고 국민이 행복하게 되는 것이 나의 목적이고 그 외에는 다 번뇌”라고 했다. 그런 충정을 가진 일국의 대통령이라면 그의 의리는 당연히 오천만 국민을 향했어야 옳다. 그러나 대통령의 의리는 오로지 한 사람에게 꽂혀 있었다. 그의 의리는 40년 지기 최순실뿐이었다. 그런 삼류급 의리에 지금 대한민국이 번뇌에 젖어 있다.
배연국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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