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라 불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은 한국경제에 대형악재라 할 만하다. 하지만 트럼프 쇼크에 기민하게 대응해야 할 경제팀은 혼선을 거듭하며 무기력한 모습마저 보인다. 국정 혼란으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교체 작업이 전면 중단돼 부총리와 금융위원장 모두 사실상 공석인 상태라 정책의 ‘큰 그림’이 마련되지 않아 손도 못 대고 있다는 게 관가의 전언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17일 “임종룡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현안 보고와 청문회 준비 등이 사실상 중단됐다”고 귀띔했다.
앞서 기재부 실·국장들은 금융위원장인 임 후보자가 부총리에 지난 2일 지명되고 나서 직후 청문회 준비 등을 돕고자 주말을 이용해 현안 보고를 했으나 국정 혼란이 가중된 지난 주말(12∼13일)에는 이런 자리를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임 후보자의 공식 일정 탓도 있지만 부총리 임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져 청문회 준비를 하기에 어색해진 형국에 영향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기재부는 지난주까지 임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요청서를 대통령에게 제출할 예정이었지만 이날까지 제출하지 않은 상태다.
그렇다고 유일호 현 부총리에 힘이 실리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사실상 경질된 유 부총리가 경제정책을 진두지휘할 동력이 부족해서다. 확실한 사령탑이 없어 기재부 공무원들은 누구를 중심으로 정책을 준비해야 할지 우왕좌왕하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내년도 경제정책방향 발표조차 제대로 준비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트럼프 미 행정부의 출범 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도 내년 경제정책방향에 담아야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사실상 백지상태라는 게 관가의 전언이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재부가 트럼프 당선자 인수위원회와 접촉하기 위한 정부의 고위 실무대표단에서 빠진 것도 경제정책 누수 현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금융 공공기관 인사 차질… 앞으로가 더 문제
정부 정책을 집행하는 손발이 돼야 하는 공공기관의 인사도 파행을 겪고 있다. 기재부 장관이나 금융위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수장을 임명하는 금융 공공기관의 사례만 봐도 난맥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날 대통령 임명이 떨어진 문창용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만 해도, 금융위가 청와대에 임명제청안을 제출한 것은 열흘 전인 지난 7일이다. 임명이 이처럼 늦어진 것은 이례적인 일인데도, ‘윗선’에서는 가타부타 설명조차 없었다고 한다.
유재훈 사장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회계감사국장에 임명돼 지난 2일 퇴임한 한국예탁결제원은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를 꾸려놓고도 공모 등 관련 작업에는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다음주 임추위를 열어 공모에 돌입할 예정이지만, 금융위원장 제청까지 한 달 넘는 공백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예탁결제원 주변에서는 차기 사장을 두고 몇몇 정부 부처가 경쟁하고 있으나 윗선에서 정리가 안 돼 임추위가 눈치만 보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내달부터는 권선주 IBK기업은행장(27일)을 시작으로 김한철 기술보증기금 이사장(2017년 1월13일), 이덕훈 한국수출입은행장(2017년 3월 5일)의 임기가 차례로 마무리된다. 일부 공공기관에서는 수장 인사를 앞두고 후보자 간 경쟁이 격화하면서 투서도 난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황계식·이진경·이우중 기자, 세종=안용성 기자 cul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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