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렐은 훗날 28종의 약물을 처방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현대 전문가들은 대개 믿지 않는다. 축소 혐의가 짙다는 것이다. 모렐이 즐겨 쓴 것은 아편, 암페타민 등이다. 아편도 그렇지만 우울증 등에 쓰이는 암페타민도 부작용이 있다. 강박 신경증을 낳거나 증상을 악화시키는 것이다. ‘광기의 리더십’을 쓴 미국의 정신과 전문의 나시르 가에미는 “모렐의 처방이 조울증 증상을 악화시켰다”고 단언한다.
이승현 논설위원 |
백악관의 ‘의료 쿠데타’는 성공했다. 케네디와 미국, 세계에 바람직한 뒤집기였다. 해군 제독 조지 버클리를 비롯한 공식 의료진은 대통령 동생 로버트와 손잡고 결국 제이콥슨을 떼어놨다. 향정신성 약물 주사를 남발하던 개인 주치의 재닛 트라벨의 영향력도 1년에 걸친 압박 끝에 축소됐다. 케네디의 약물 복용량은 현저히 줄었고, 심신은 안정됐다고 한다. 쿠데타 이후에도 매일 스테로이드 4종을 복용했고 지사제, 비뇨기계 감염 예방제 등의 처방도 끊이지 않았다지만.
국가 수반의 건강은 국가 안위와 직결된다. 상투적 수사가 아니다. 히틀러, 케네디의 결정이 세계사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만 돌아봐도 100% 수긍할 수 있다. 정신 건강만인가. 육체 건강도 중요하다.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던 나폴레옹은 그 유명한 워털루 전투 때 치질이 심해 지휘를 제대로 못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워털루 패인은 치질인지도 모른다. 케네디의 전임자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1955년 심장발작을 일으키자 국제 금융시장이 졸지에 붕괴 직전까지 몰린 일도 있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얘기들을 왜 늘어놓고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을 둘러싼 최신판 의료 스캔들이 하도 황당해서다. ‘길라임’ 가명 얘기로 세상이 시끄러운 스캔들 말이다. 대통령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는 엊그제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을 언급했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와 그 언니 순득씨가 강남 차움의원 등에서 대리 처방을 받았다는 ‘비선 진료’ 의혹이 확산되자 방어막으로 사생활 언급이 나왔다는 분석이 있다. 사실이라면 기가 찰 노릇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공인 중의 공인이다. 사생활을 찾고 싶으면 대통령 자리에 앉지 말아야 했다. 대통령 건강정보는 2급 기밀에 해당한다는 점도 있다. 대통령 혈액 등의 정보는 청와대 의무실 관리하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민간 병원으로 보내 기이하게 검사했다. 이게 정상인가. 사생활 존중 차원으로 볼 일인가.
비선 진료 의혹은 국정농단 사태의 곁가지일 것이다. 관련 의료진이 모렐이나 제이콥슨 같은 돌팔이급일 리도 없다. 대통령 건강은 양호할 것이다. 배신의 트라우마가 깊은 것만 빼고는. 하지만 그렇게만 믿고 무심히 넘길 계제는 아니다. 보건복지부가 형사고발 절차를 밟는 만큼 전모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 건강 상태도 명확히 알았으면 한다. 왜? 국민 불안이 크니까. 청와대는 보도진이 묻지 않는데도 굳이 건강 상태를 세세히 밝히곤 했다. 지난 6월에 그랬고 2014, 2015년엔 여러 번 그랬다. 또 한 번의 친절한 공개가 어려울 까닭이 없다. 지금은 꺼진 불도 다시 봐야 할 위중한 시국이다. 대통령 신상 문제라면 더욱 그렇게 임해야 한다.
이승현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