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이 헌법에 보장된 책임을 다하겠다고 버티고 있어 야 3당의 퇴진 압박은 공허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청와대는 오히려 강성 기류가 뚜렷해졌다. ‘불법으로 드러난 게 없으니 여론에 밀려 사퇴하진 않겠다’는 것이다. 대표적 친박 인사인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어제 국회 법사위 회의에서 “촛불은 촛불일 뿐 바람 불면 다 꺼지게 돼 있다”고 했다. 대통령 퇴진·하야를 요구하는 촛불 민심을 무시하는 발언이다.
대통령 측의 강경 선회에는 야당 책임도 있다. 2선 후퇴·거국중립내각을 요구했다가 퇴진 당론을 정하기까지 오락가락했고 제1야당의 청와대 회동 철회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야 3당은 퇴진 운동만 강조할 뿐 ‘질서있는 퇴진’을 위한 로드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어제 회동에서도 특검 추천과 국정조사에 적극 공조한다는 뜻만 밝혔다.
집권 세력의 버티기 행태에 이번 주말 촛불 집회 양상이 어떻게 흐를지 장담할 수 없다. 분노한 민심이 폭발하기 전에 야당 주도의 난국 수습을 위한 질서 있는 논의가 시급하다. 일부 여야 의원들은 국회에서 대통령 퇴진 절차에 관한 논의를 벌이자고 나섰다. 촛불 정국에 선명성 경쟁을 벌이던 문재인, 박원순, 안철수 등 야권 대권 주자들도 모레 모여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키로 했다. 하지만 자기 정치에 급급한 대권 주자들이 여론에 편승하지 않고 책임있는 목소리를 낼지 의문이다.
중구난방식으로 국민을 설득할 정치적 해법을 만드는 건 쉽지 않다. 우선 야 3당 지도부가 대통령에게 요구할 퇴진 시점, 총리 추천 여부, 대통령 퇴진 이후의 정치 일정에 대한 합의부터 이뤄야 한다.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탄핵소추 절차를 밟겠다는 결의도 밝혀야 한다. 야당 지도부가 광장의 분노를 정치, 제도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내놓지 않고 주도권 다툼만 벌인다면 역풍이 몰아칠 것이다. 국가 안팎으로 경제·안보 위기가 가중되는 상황에서 국정 공백을 메우는 책임 있는 야당의 리더십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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