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도 논란이었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의 연관성이 부각되면서 찬성 결정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재해석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비선실세 최순실 일가에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삼성을 위해 권부 핵심에서 압력을 넣어 국민연금에 찬성 결정을 하도록 한 게 아니냐는 게 의심의 윤곽이다.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에게 청와대와 당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전화를 걸어 찬성을 종용했다는 증언도 최근 나왔다. 그는 지금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는 데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국민연금이 배임 논란을 무릅쓰고 삼성을 화끈하게 도와준 꼴인데, 그 배경에 ‘최순실’이 어른거렸던 것이다. 당시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지분 11.21%를 쥔 대주주였다.
당초 논란은 합병 비율의 불공정성에서 비롯됐다. 제일모직 1주를 삼성물산 약 3주와 바꾸는 합병비율이 삼성물산 입장에서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의견을 물어본 의결권자문기구인 ISS, 기업지배구조원 모두 반대 의견을 냈다. ‘금융권 돈키호테’, 주진형 사장이 개혁을 이끌었던 한화증권도 두 차례 합병비율의 불공정성을 지적하는 리포트를 냈다.
20일 재벌닷컴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보유한 합병 삼성물산 보유 주식가치는 지난 17일 종가 기준 1조5186억원으로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전의 양사 지분가치 2조1050억원과 비교해 27.86%(5865억원) 쪼그라들었다. 국민 노후자산이 그만큼 날아간 것이다. 국민연금은 이에 대해 “합병에 따른 기대 효익과 기금 포트폴리오 내 영향, 여러 논란과 관심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주어진 원칙과 절차, 지침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했다”고 밝혔다.
류순열 선임기자 ryoos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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