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이제 윗물이 맑기를 기대할 수 없다. 윗물이 맑지 않아도 아랫물은 스스로 자정한다. 장관 청문회 때마다 대두되는 단골 메뉴가 부동산 투기, 논문 중복게재, 병역 면제 등이다. 권력과 밀접한 우리 사회 상층부의 전유물이다. 서민에게는 낯선 용어들이다.
이길연 다문화평화학회 회장 |
우리 국군도 2025년부터는 다문화군대로 변모할 것이라고 한다. 현재는 다문화가정 출신 자녀가 매년 1000명씩 현역에 입대하고 있지만 매년 증가해 2025년부터는 연평균 8500여 명씩 입대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완득이 엄마’로 잘 알려진 이자스민 전 국회의원 아들 이승근씨가 군에 입대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군대는 ‘당연히 가야 한다’며, ‘의무를 다해야 권리가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1992년에 국제결혼을 해 21년째 국내에서 생활하는 일본 출신 미가이 유코씨도 얼마 전 아들을 군대에 보냈는데, 한국에서 제 역할을 하며 당당하게 살게 하고 싶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려면 “스스로 외국인이라고 여기지 않고 당연히 나라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군대에 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여겼던 다문화가정 자녀들이지만 이제는 어엿이 국방 의무를 다하겠다고 피력하는 것이다.
다문화가정 자녀들은 출생 시 이중국적을 취득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인 18세에 이르면 국적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한국 국적을 갖지 않으면 군에 가지 않을 수도 있다. 한때 외모가 다른 혼혈인, 속된 표현으로 ‘튀기’라는 명목으로 입대마저 거부되어 신체검사에서 옷도 벗지 않은 채 낙제인 4급 판정을 받은 적이 있다. 불합리한 대우로 아무런 사회적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고차원적인 차별이었다.
그동안 보살핌이나 수혜의 대상자로만 여겨졌던 다문화가정 자녀의 자진 입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수행해야 할 지극히 당연한 복무이면서도 그야말로 아래로부터의 조용한 의식혁명이다.
이길연 다문화평화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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