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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값비싼 것이 의미 있는 작품된 현실… 예술엔 삶 담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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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2-05 20:58:08 수정 : 2016-12-05 20:5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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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 길을 잃다’ 펴낸 미술평론가 심상용 교수 프랑스에서 1980~90년대에 초현실주의를 재조명하는 작업이 활발하게 전개됐다. 정치적인 상황이 어수선한 가운데 초현실주의라면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을까 하는 탐구였다. 초현실주의에서 유의미한 메시지를 읽어내려는 노력이다. 초현실주의를 현실적으로 다시 다가오게 한 것이다. 퐁피두센터가 비평가 학자들을 동원한 몇 년에 걸친 연구 작업의 성과물이기도 하다. 전시 세미나 책자발간 등 학문적 유희를 즐겼다. 이에 비해 한국의 단색화는 사회 정치적 상황뿐 아니라 학문적 기반도 없다. 단적으로 보이는 한국미술의 현주소다. ‘한국미술 길을 잃다’(옐로우헌팅독)를 펴낸 미술평론가 심상용(55) 동덕여대 교수의 지적이기도 하다.

“학문적, 비평적, 시대적 맥락도 없는데 왜 갑자기 단색화인가. 아카데미적 배경이 전혀 없는 단색화 붐이 한국미술의 현실적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단색화 붐의 배후엔 단지 시장적 요인만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다보니 울림이 있을 수 없다. 실제로 시장에서의 거래, 재고 소진, 갤러리들의 수익만이 회자되고 있다.

“사회적 반향이 전혀 없으니 기형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전혀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심상용 교수는 “충실한 한국인의 삶과 가치를 담아내는 것이 한국미술의 힘”이라며 “독점화된 글로벌미술과의 결탁과 타협은 한국인의 삶과의 연결고리마저 잘라내고 있다”고 우려했다.
단색화가 공공적, 미학적, 사회적 성격도 없이 갤러리비즈니스에 그치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이런 식으로 가면 단색화의 생명은 그리 길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에선 벌써부터 ‘포스트 단색화’의 테마주로서 민중미술이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 민중미술은 단색화만큼 매력적이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선언·선동 메시지 등 노이즈가 많아 세척(?)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민중’을 희석시키지 않고서는 주류 컬렉터들의 거실 안으로 들어가기 어렵다. 컬렉터들의 ‘사적 취향’과 민중이라는 코어 사이에는 봉합이 쉽지 않을 간극이 있다.”

그는 한국미술의 글로벌화 이슈에 대해서도 그 실체를 정확히 들여다볼 것을 주문한다. 모두가 한국미술의 세계화를 지상과제처럼 부르짖고 있는 상황에서 다소 생소한 발언이다.

“글로벌은 유령 같은 것이다. 예술을 산업과 혼동한 시장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자동차나 스마트폰같이 대량생산되는 공산품은 가장 좋은 기술이 글로벌 스텐더드로 시장을 석권하게 된다. 하지만 뉴욕이나 데이트모던에서 생성된 것이 글로벌 미술인가. 그렇게 좇아만 간다면 망하는 길이다.”

그는 의미(정신)가 시장을 만들어도 시장이 의미를 만들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시장은 의미만 거래할 뿐이다.

“한 사회가 의미(이야기)를 풍성하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때가 됐다. 분명한 것은 시장은 의미의 생산기제가 아니다. 예술은 삶과 연결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사실 미술사에서 배운 미술들은 언제나 그 시대와 호흡을 같이 했다. 작가들도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다. 때론 주류에 구박을 당하면서도 자신들의 생각을 지켜나갔다.

“우리 미술이 잘 되려면 언젠가는 세계인의 공감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 얘기가 삶속에서 깊이 추구돼야 한다.”

기실 삶이란 누구나 살아가는 보편적인 것이다. 각자의 삶의 특수성에서 독특한 의미를 만들어 내면 감동이 크게 되고, 그것이 자연스레 글로벌로 이어지게 된다는 얘기다.

“미술에서도 글로벌이라는 시장적 가설은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미술시장의 양극화만 심화시킬 뿐이다. 누구를 위한 미술의 글로벌화인지 통찰할 시점이다.“

그는 우리의 비극적인 근현대사가 삶에 대한 성찰 기반을 약화시켜 왔음을 주지시킨다. 정치경제적 한계로 서양미술을 일방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고 이해의 깊이도 약했다. 산업화처럼 추종하고 따라가면 되는 것으로 간주했다.

“파리에서 활동했던 이응노 화백이 한국의 근현대사를 치열하게 호흡하면서 만들어낸 인간 군상들에선 우리의 아픔과 상처가 담겨 서구인들의 공감을 불렀다. 우리 작가들이 지표로 삼을 만한 인물이다. 시대정신이 빈곤한 뜬금없는 단색화와는 비교가 된다.”

서구 중심의 세계미술계는 1970년대 이후 이즘이나 무브먼트가 사라졌다. 이런저런 담론들만 소소하게 떠돌고 있을 뿐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전형적인 양상이라 할 수 있다.

“모더니즘의 특징은 어떤 미학적 정점이 존재한다는 확신에 있다. 거기에 이르러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선언도 하고 작가들을 모이게 만들었다. 사실주의, 인상주의, 추상주의가 그런 것들이다. 포스트모던은 그런 미학적 정점을 허상이라며 해체시켰다. 대신 그 자리를 시장에 내주었다.”

그동안 미술의 수레바퀴는 정신적 요소와 이를 사회화시키고 공유케 하는 시장이라는 두 축이 맞물려 굴러왔다. 이런 구조가 무너지면서 시장이라는 동력만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색화의 일시적 붐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1980~90년대 영국의 YBAs(Young British Artists)와 미국의 포스트 팝이 시장동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전형적인 예다. 분명한 것은 시장의 이야기만 만들어가는 상황은 부조리하고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 의미 있는 작품이 비싼 것이 아니라, 값비싼 것이 의미 있는 작품이라는 전도된 현상은 어차피 과도적일 수밖에 없다. 피로현상이 이미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는 한국미술의 현실도 예외가 아니라고 했다. 1970~80년대 서양미술은 나름대로 의미를 생산하며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여, 한국미술은 따라만 갔다. 지금은 글로벌서브프라임사태처럼 서양미술 자체가 삐걱거리면서 예전과 달리 시장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데미안 허스트같이 시장형 작가들이 탄생됐다.

“우리가 서구를 그냥 따라만 가야 하는지 진정으로 고민을 해야 할 때다. 경제현상처럼 모범답안이 아니라는 점을 각성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그는 5일 취임 1주년을 맞아 국립현대미술관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이 밝힌 세계무대를 중점에 둔 ‘마리 프로젝트’ 본격 시동에 대해서 극히 회의적이다. 세계화를 위한 담론이나 세계적 미술관과의 교류협력전시가 어느 시각에서 이뤄지고 있는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서다.

“마리 관장이 취임 때 한국 근현대미술의 내러티브가 빈곤하고, 그래서 유능한 작가들에게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알고 있다. 외국인 관장으로 서구 중심의 고착화된 위계적 인식이 아니라면 그렇게 한국미술의 대변자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언젠가 퐁피두 관장을 지낸 한 인사에게 한국 미술관의 방향성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돌아온 답변은 왜 나한테 자문하냐는 식이었다. 한국이라는 공동체의 가치를 정제된 이야기로 보여주는 것이 한국 미술관의 역할이라는 점에서 한국인이 숙고할 문제라는 것이었다.

“시대착오적이게도 한국미술은 여전히 의미생산 상실로 시장에 이미 무릎은 꿇은 서구미술계의 권위인증에 목을 매고 있다. 한국미술의 과제는 글로벌 미술이라는 가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세계시장과 그 네트워크의 신화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심상용 교수는 서울대와 파리8대학, 파리1대학에서 조형예술학과 미술사학을 공부했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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