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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멀수록 폭력적이 된다. 감시가 어렵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시대 때 권력자들은 대중과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전두환·노태우 대통령 때는 물론이고 심지어 문민정부를 이끌었던 김영삼 대통령도 권좌에 오른 뒤에는 접근이 쉽지 않았다. 김 대통령이 1995년 7월 1일 삼풍백화점 붕괴현장을 방문했을 때 사건 기자들은 경호원들에 의해 들려나갈 정도였다.

미국은 백악관 길 건너편 집회를 허용한다. 시위대의 고함소리가 대통령 집무실까지 직선으로 전달된다. 2006년 6월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에 반대하는 한국 시위대 100여명이 백악관으로 이어지는 펜실베이니아 애비뉴에서 북과 꽹과리를 치면서 시위했다. 백악관 건너편 공원에 몰려가 고함을 질러댔다. 경찰관들은 이방인 시위대의 집시법 위반만 체크하고 있었다. 최루탄과 화염병, 돌멩이가 날아다니는 시위에 익숙했던 한국 기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지 않을 수 없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헬기를 타면서 펜스 건너편 시민들에게 손인사하는 모습도 부러웠다.

권위주의 잔재는 큰 계기가 마련되지 않고는 좀체 걷어내지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국정농단 주범 최순실씨는 한국적 권위주의 하나를 허물어트리는 데 기여했다. 광화문 집회 참가자들은 지난주 청와대 100m 근처까지 접근했다. 세월호 희생 유가족들이 사고 발생 2년7개월 만에 청와대 앞에서 목청을 높일 수 있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국회도 권위를 내려놓기로 했다고 한다. 국회는 오늘 집시법상 금지된 국회 100m 범위 내 집회를 허용키로 했다. 현직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이 진행되는 동안 국민들의 목소리가 의사당까지 들리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시민의식의 성숙이 가져온 선물이다. 집회현장에서 복면 도끼 밧줄이 사라졌다. 물대포도 슬쩍 뒤로 밀려났다. 1년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이 사석에서 언론이 앞장서서 시위문화를 바꾸는 캠페인을 이끌어 달라던 하소연이 아직 귀에 쟁쟁하다. 시위문화가 바뀌면서 얻은 것은 아날로그 방식으로도 권력 핵심에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권력감시까지 가능하다면 금상첨화이다.

한용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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