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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순열의경제수첩] 신뢰를 무너뜨린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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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2-10 00:53:57 수정 : 2016-12-10 00:5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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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배신한 ‘박순실 정권’
역사적 단죄는 이제 시작일 뿐
위선과 주술의 족쇄를 끊고
역사 심판대에 바로 세워야
애초 박근혜 정권은 없었다. 실상은 ‘박순실 정권’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그랬듯 최순실은 박 대통령의 심신을 지배했다. ‘올림머리’ 꼭대기에 앉아 장·차관 인사를 설계하고 나라 예산과 정책까지 주물렀다. 선출되지 않은 최고권력이었다.

박 대통령도 아버지를 모방하고 답습했다. 불통 정치로 유신독재의 아픈 기억을 호출했다. 직언하는 측근은 배신자로 찍어 내쫓고 보복했다. 최순실에 찍힌 공무원은 “나쁜 사람들”이라는 말 한마디로 잘랐다. 재벌 총수를 불러 돈을 뜯었고, 최순실을 위해 ‘브로커’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류순열 선임기자
최고권력이 불통에 불법인 나라에 법치가 숨 쉴 공간은 없었다. 주변엔 ‘부역자’들만 남아 위세를 떨치고, 장관들은 눈치나 보는 ‘월급쟁이’로 전락했다. 법치의 보루여야 할 검찰 수뇌는 불의한 권력의 심기를 살피며 정의를 외면했다. 그렇게 정부 시스템은 먹통이 되고, 헌정질서가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이 모든 게 들통났는데도 스스로 물러나지 않았으니 탄핵은 마땅하고 유일한 길이었다.

탄핵 이유야 차고 넘친다. 헌정질서 파괴는 내란죄와 마찬가지로 중범죄다. 직권남용, 뇌물, 강요…. 형법상 죄목도 여럿이다. 이들의 죄과는 비단 법률적인 것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국가 공동체의 신뢰를 무너뜨린 죄는 법률로 재단할 수 없을 뿐 묵과할 수 없는 중죄다. 신뢰는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자본’이다. 정치든, 경제든 물적 자본과 인적 자본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없다면 발전할 수도 없고,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정치철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신뢰가 기업과 국가의 제도, 경제 발전 수준을 결정한다고 봤다. 신뢰의 중요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진리다. 2500여년 전 공자는 무신불립(無信不立),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설 수가 없다”고 했다.

‘박순실 정권’ 4년간 신뢰는 사회 곳곳에서 허물어졌다. 위기 시 국가가 내 목숨을 지켜줄 거란 믿음은 2014년 4월16일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와 함께 침몰했다. 교육만큼은 기회의 균등과 정정당당한 승부를 보장할 것이란 믿음은 최순실과 그의 딸 정유라의 반칙과 이를 돕거나 방조한 정부와 대학의 타락을 목도하곤 맥없이 무너졌다. 그들은 돈과 권력만 있으면 학교에 가지 않고도 졸업장을 받고, 절차를 무시한 우격다짐으로 명문대도 들어갈 수 있음을 증명함으로써 보편적 가치에 대한 믿음을 한방에 부숴버렸다. 국가 권력이 공정하게 사용될 거란 믿음, 법을 지키며 사는 게 떳떳한 것이란 믿음도 흔들어놓았다. 대통령이 이권을 연결해주는 ‘브로커’ 역할까지 한 사실이 드러나고, 죄 짓고도 큰소리치는 모습을 보이면서 신뢰는 바닥이 났다.

먹고살기 바쁜 국민들이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뛰쳐나온 건 허물어진 신뢰를 참을 수 없어서다. 최고 권력이 무너뜨린 신뢰를 국민들이 혹독한 대가를 치르며 다시 세우고 있다. 탄핵을 이끌어낸 건 수백만 촛불이지, 이 땅의 위정자들이 아니다. 박 대통령이 거푸 던진 이간계에 좌고우면, 우왕좌왕하던 야당과 새누리 비박계가 결국 탄핵열차에 올라탄 것은 촛불의 힘에 떼밀린 결과일 뿐이다.

그러나 그를 탄핵하는 것만으로 무너져내린 신뢰가 온전히 회복될 것 같지 않다. ‘박순실 정권’의 적폐와 부역자들을 몽땅 단죄하지 않는다면 신뢰를 허문 그 DNA는 생명력을 유지할 것이다. ‘박순실 정권’은 그들의 아버지 시대에 뿌려진 씨앗이 30여년간 자라 맺은 결실이다. 박 대통령 탄핵은 ‘박정희 시대’를 객관적으로 정리하는 역사적 작업의 시작일 뿐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역사의 전환점에 섰다. ‘박순실 정권’을 가능케 했던, ‘박정희가 없으면 오늘 대한민국은 없다’는 주술정치에서 이제 깨어날 때다. 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은 산업화의 공이 있다. 친일과 독재, 재산강탈의 과오도 있다. ‘박정희 위인전’ 같은 국정교과서로 덮을 수 없는 엄연한 역사다. 공과 모두 사실 그대로 후세에게 전해져야 한다. 신화가 역사가 될 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과거의 덫에서 벗어나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딸이 스스로 기회를 만들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류순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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