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분담금 등 이행 여부 캐물어
미 인수위, 한국과 달라 효과 의문
트럼피즘 살펴 미 의존 재검토를 현재 유엔 회원국은 193개국이다. 이 중에서 미국을 제외한 192개국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를 ‘열공’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국정 공백 상태인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 정부가 조태용 국가안보실 1차장을 단장으로 한 정부 대표단을 서둘러 미국에 보냈고, 새누리당이 원유철 전 원내대표를 단장으로 한 방미대표단을 파견했다. 기자는 조 차장과 원 단장에게 다른 나라 정부도 트럼프 인수위에 대표단을 보내고 있고, 다른 나라 집권당도 대표단을 미국에 파견하고 있는지 물었다. 두 사람 다 “다른 나라는 그렇게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고 했다. 언뜻 보면 탄핵 정국의 혼란 속에서도 한국의 정부와 집권당이 트럼프 시대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비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가 외국 정상으로는 최초로 트럼프 당선자와 회담하는 선수를 쳤기에 한국 측 노력의 빛이 바랬을 뿐이다.
한국 대표단이 마이클 플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 트럼프 인수위 선임고문인 에드윈 퓰러 전 헤리티지재단 회장 등에게 던지는 질문은 대동소이하다. 트럼프가 대선 유세에서 한·미 관계와 북한 문제 등에 관해 발언한 내용이 실제로 차기 행정부에서 이행될지 여부를 캐묻는 것이다. 주한 미군 주둔 분담금 인상과 한국의 핵 무장 용인 가능성, 트럼프 당선자와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의 회담 추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재협상 등이 한국 측이 제기하는 핵심 관심사이다.
국기연 워싱턴 특파원 |
미국에서 새로 정부가 출범하면 한반도 문제 등 대외 정책의 윤곽이 잡히는 데 최소한 6개월 이상 걸리는 게 관행이다. 국무부 등의 차관보급 이상 책임자 1000여명이 상원 인준을 받아야 하고, 이들이 특정 이슈에 대한 정책을 정리하는 데 최소한 수개월이 더 걸린다.
한국 정부가 현 시점에서 트럼프 시대를 준비하려면 트럼프의 구상인 ‘트럼피즘’이 미국과 세계에 어떤 근본적인 변화를 야기할지에 대한 큰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의 언론과 학계의 분석에 따르면 트럼피즘은 크게 두 가지이다. 미국 국내적으로는 탈정당, 탈이념 시대의 개막을 예고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 공화당과 민주당으로 나뉘는 전통적인 접근법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자유무역과 국경 개방이라는 공화당의 전통적인 정책 노선을 폐기했다. 국제적으로는 지난 70여년 유지돼온 제2차대전 이후의 국제질서 체계를 폐기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그동안 세계의 경찰국가 노릇을 하면서 전후 질서 수호자 역할을 했으나 이제 이 질서를 스스로 파괴하는 주역이 되려 한다. 트럼프가 표방하는 신고립주의와 미국 우선주의는 기존 국제 질서의 종언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트럼피즘으로 인해 안보와 경제라는 두 개의 기둥이 뿌리부터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차제에 미국 의존 일변도의 안보 시스템을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문제는 지엽말단에 불과하다. 한·미 FTA도 마찬가지이다. 단순한 협정 개정이 문제가 아니다. 한국이 무역 의존형 경제 성장 모델을 고수할 수 있을지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트럼프는 한다면 하는 인물이다. 한국이 과거의 낡은 사고 방식에 얽매인 ‘희망적인 사고’(wishful thinking)를 서둘러 접어야 한다.
국기연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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