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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남한의 탈신화화와 북한의 신화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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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2-20 01:00:48 수정 : 2016-12-20 01: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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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인 역사발전 못이루고 돈·패거리문화에 종속된 우리 / 탄핵 둘러싼 집단최면 벗어나 이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자 야당의 한 의원은 “이제 박정희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참으로 해방공간의 어떤 파르티잔의 말보다 섬뜩한 저주의 한마디다. 그러고 보면 박 대통령의 탄핵은 산업화의 신화를 깡그리 지우기 위한 청산작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는 의미가 추가된다. 남남갈등의 속내를 처절할 정도로 드러낸 진실이다.

며칠 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가 주최한 ‘김정은 체제 5년의 북한 진단 그리고 남북관계’ 포럼에서 김정은 체제가 성공적인 3대 세습에 성공했으며, 남한정부의 생각과 달리 김정일 때보다 훨씬 용의주도하게 준비된 세습과정이었다는 연구자의 발표가 주목되었다. 지병을 지니고 있던 김정일은 일찍부터 김정은 체제를 준비했다는 것이었다. 제7차 당 대회와 최고인민회의의 헌법 개정은 김정은 체제의 완성을 상징한다고 했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그런 북한에 비해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체제는 지금 풍전등화이다. 최순실의 내홍(內訌)은 민중혁명적 상황에 직면케 하고 있으며, 대통령을 탄핵한 여야 의원들은 심지어 헌법파괴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탄핵으로 살벌한 국회의 모습은 청년실업과 인구절벽과 부익부빈익빈 양극화의 모습만큼이나 을씨년스럽다.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세계적 기업의 재벌총수들이 국회청문회에서 일렬 횡대로 앉아 있는 모습을 외신들은 크게 조롱했다. 참 이해하기 어려운 광경이었을 것이다. 이게 소득 2만7000달러의 대한민국의 품격이다.

100년 전 구한말 근대화를 앞두고 당파싸움에 여념이 없었던 선비들보다 나을 것도 없다. 누구보다도 한국에 정통한 일본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갈등과 그 틈바구니를 파고든 좌파·종북세력들에 의해 심하게 균열되어 있다. ‘통일대박’을 떠들던 남한은 어퍼컷 한방을 맞고 다운상태에 있다. 정신 차리고 몸을 추슬러 일어서지 않으면 영원히 선진국의 기회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박근혜 이후가 더 걱정인 것은 대권주자들이 하나같이 국가생산력의 향상과 산업화에는 문외한일 뿐만 아니라 제4차 산업화에는 아예 생각조차 없는 인물들로 비치기 때문이다. ‘국회독재’와 ‘제왕적 대통령’으로 맞선 오늘의 파탄정국은 쉽게 안정될 것 같지는 않다. 우리 민족은 왜 합리적인 역사발전에 지진아인가.

한 언어학자에 따르면 ‘상태문화의 문법’을 가진 나라는 지구촌에서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아메리카 인디언이 대표적이다. 또 스페인 북부 바스크족, 아일랜드가 남아 있을 정도라고 한다. ‘상태문화의 문법’은 ‘(주어생략) be동사(자동사)+형용사’로 구성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목적의식이 약하고 자연친화적이기 때문에 역사적 정체성이 약하다고 한다. 명사가 발달하지 못하고 형용사가 동사처럼 변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에 반해 ‘행동문화의 문법’은 ‘주어+동사(타동사)+목적어’로 목적의식이 뚜렷해서 개념과 명사가 발달함으로써 논리적·역사적 사유를 잘한다고 한다. 앙드레 말로도 저서 ‘서양의 유혹’에서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우리말도 주어를 잘 생략하고 형용사를 즐겨 쓰는 상태문화의 언어에 속한다. 그래서 개념창조에 서툴고, 논리적인 작업을 요구하는 철학을 싫어하여 남의 이데올로기를 추종한다. 자연친화적 민족이 자연을 개발하고 이용하는 산업화를, 그것도 50여년 만에 이룬 것은 거의 기적에 속한다. 세계가 설명하지 못하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셈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돈과 욕망과 패거리문화의 노예가 되어 있다.

현대국가는 여러 신화들로 구성되어 있다. 남북한의 모습을 보면 북한은 김일성왕조의 신화화에 성공하고 단군신화마저 포용한 반면, 남한은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화의 신화화에 실패하고 있다. 그 큰 이유는 주체적인 역사의식의 부족과 방해세력에 의해 역사정리를 못했기 때문이다. 흔히 신화와 정통성은 본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만들어지는 것이다. 정통성의 확립은 민주주의와도 상관이 없다. 민주주의를 하지 않는 북한이 정통성을 달성했는데 남한은 실패하고 있으니 말이다.

역사는 신화화와 탈신화화의 전쟁이다. 역설적으로 탈신화화의 이데올로기인 마르크시즘을 신봉하는 북한은 신화화에 성공한 반면 남한은 많은 신화적 자산이 있음에도 탈신화화되어 버렸다. 탄핵을 둘러싼 말의 성찬과 집단최면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저주와 축복의 법칙’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남을 저주하는 사람은 결국 스스로 저주를 받고, 남을 축복하는 사람은 결국 스스로 축복을 받는 법칙 말이다.

필자는 남북한을 비교하면서 북한을 ‘국민 없는 국가’로, 남한을 ‘국가 없는 국민’으로 묘사한 적이 있다. 둘 다 불완전한 국가의 모습이다. 남북 분단과 체제 경쟁으로 인해 그렇게밖에 될 수 없는 사정이 있는가 모르겠지만 남한만이라도 국민은 국가를 존중하고, 국가는 국민을 제대로 경국제민(經國濟民)하는 국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탄핵정국이 물러가면 내년엔 대선정국으로 치닫게 될 것이고, 여야가 정권쟁취를 위해 당쟁으로 소모할 게 걱정이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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