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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나무를 아세요? 고양이가 과일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여자는 해변 묘지로부터 조금 떨어진 도로변에서 남자를 기다리는 중이다. 남자는 여자가 시큰둥하게 던진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고양이가 열매처럼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다……. 열매가 매달리기 전엔 어떤 빛깔의 꽃을 피울까. 검정 하양 오렌지색 잿빛 갈빛? 꽃의 빛깔에 따라 나무에 매달릴 고양이들의 몸빛도 달라지는 것일까. 모로코에서 만난 여자는 말했다.

“모로코에 온 지는 햇수로 십 년 됐지만, 가이드를 시작한 건 채 일 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아랍문학을 공부하러 왔다가 이곳에 정착한 한국 남자와 결혼을 했는데, 그이가 먼저 제 곁을 떠났어요. 한국에 남아 있던 유일한 혈육인 노모는 남편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고, 그곳에서 저는 오래전에 잊혀진 거나 다름없습니다. 남편의 체온이 남아 있는 이곳을 떠나고 싶지도 않고, 마땅히 갈 곳도 없습니다. 할 수 없이 가이드로 나섰지요.”

고맙다고 말하자 손사래를 쳤다.

“뭘요. 선생님 덕분에 서너 달은 아이들 굶기지 않아도 되는데요. 오히려 제가 고맙지요.”

“아이들이 몇이나 되나요?”

“처음엔 서른 마리까지 간 적도 있는데, 지금은 스무 마리 정도 남았어요.”

듣고 보니 그녀는 남편이 묻힌 땅을 떠나지 못하고 혼자 살면서 길고양이들에게 정을 쏟고 있었다.

“남편이 아이 하나 심어놓지 않고 서둘러 가버린 뒤부터였을 거예요. 거리에 불쌍하게 버려진 고양이들이 이곳 모로코엔 유난히 많거든요. 녀석들 몇 마리를 데려다 밥을 해 먹였더니, 금세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우리 집은 고양이 천지로 변해 버렸어요. 밤에도 제 머리에서 발끝까지 조르르 몰려와 붙어서 자는 바람에 아침에 일어나면 녀석들이 할퀸 상처들로 온몸이 성할 날이 없었어요. 그래도 녀석들을 떼어놓을 수가 없더군요.”

여자는 온몸에 자욱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만 그 녀석들을 떼어놓을 수 없다고 했다. 밤마다 온몸에 고양이를 주렁주렁 매달고 자는 모로코의 그녀가 바로 ‘고양이 나무’였다.

“지금이라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돌아가 살다 보면, 버티다 보면, 다시 당신을 그리워하고 기다릴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 아닐까요?”

“글쎄요…… 달라질 게 있을까요?”

그녀에게 더 말했어야 했다. 그리움이란 살아 있는 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살아 있지만 죽은 듯한 무채색 인간들과 구분되는 소중한 감정이라고.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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