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리더십 논쟁 실종되고
‘키맨’ 중심의 세력화 골몰
“나를 따르라” 통하던 시대 지나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인명진 목사는 ‘소금 역할론’을 폈다. 1970년대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그가 2006년 한나라당 중앙윤리위원장을 맡았을 때다. ‘변절했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그는 “미역국에도 소금이 들어가고 된장국에도 소금이 들어간다. 진보에도, 보수에도 소금 역할이 필요한 때가 있다”고 했다.분당 직전인 새누리당, 그것도 자신이 질타했던 친박 세력이 장악한 당을 맡겠다고 나섰을 때 인 목사는 다시 ‘소금 역할’을 떠올렸는지 모른다.
조기 대선이 예상되는 국면에서 인명진의 등장은 흥미롭다. 그의 인맥이 여야를 넘나들기 때문이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그제 “(인 내정자가)친박 기득권 세력에 탈당 방지용 방패막이로 이용당하다가 끝내 물러나게 될 것 같다”고 했다. 실제 인 내정자의 일성은 비박계를 향한 잔류 요청이었다. 친이명박계로 분류되고 박근혜정부에 쓴소리를 쏟아냈던 그를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한 건 그만큼 친박계 사정이 절박한 탓이 크다. 개혁 성향의 그를 앞세워 가급적 떨어져나가는 세력을 줄이고 나중에 탈당파와 재결합할 가능성을 열어놓겠다는 셈법이다.
황정미 편집국장 |
“역대 어느 선거보다 불확실성이 높아 결국 구도의 싸움이 될 것이다.” 여야 대선 전략가들의 말이다. 현재 가장 유력한 주자인 문 전 대표에 맞선 ‘반문재인’ 구도가 뚜렷해지는 이유다. “탄핵정국을 맞아 일부 세력은 과격한 운동권세력의 사고방식으로 국정을 이끌겠다는 위험천만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문 전 대표를 겨냥한 신당 창당선언문의 일부다. 인 내정자는 “무능한 진보보다는 차라리 부패한 보수가 낫겠다”고 이명박 후보 손을 들어줬던 인사다. 그는 손 전 대표와도 각별한 사이다. 문재인 세력과 정치를 함께 했던 안철수, 김종인, 손학규는 “친노 패권주의는 안 된다”고 확실히 선을 긋는다.
벌써부터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들 ‘반문’ 세력이 개헌을 고리로 손잡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정치인들이야 모처럼 일찍 개막한 대선전에 들뜬지 모르겠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이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를 이끈 건 ‘촛불집회’로 상징되는 국민들의 집단극이었다. 박 대통령의 실패는 리더십의 실패다. 검찰 수사와 진행 중인 특검 수사, 국회 국정조사 특위의 청문회에서 국민들은 ‘대통령의 부재’를 확인하고 절망했다. 대통령은 지켜야 할 공적 공간을 자주 비웠고, 자신이 판단해야 할 국정을 비선 그룹에 의존했다. 국민들이 두려운 건 또다시 리더십의 실패를 겪는 것이다.
선거에서 구도는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차기 지도자가 될 후보들의 자질, 리더십 검증이 소홀해지는 흐름이 마뜩지 않다. 여야 할 것 없이 ‘키맨’들이 판을 짜는 데 유능한 인물들로 채워지는 모양새가 그렇다. 제왕적 총재인 3김이 당을 좌지우지하던 시절 ‘3당 합당’과 같은 구도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그런 리더십이 통하지 않는다. 지난 총선에서 3당 체제를 만든 것도, 탄핵 압박으로 4당 체제를 만든 것도 국민이다. 정치인들이 판을 짜면 국민이 표를 몰아주던 시대가 아니다. 지금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실패한 리더십의 원인을 따지고 대체할 리더십을 검증대에 올릴 시점이다. 그런데도 ‘왜 문재인이어야 하는지’ 모르겠고, ‘왜 문재인이 돼선 안 된다’는지도 알 수 없다.
황정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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