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달리 농경사회에 와서는 십간(十干)을 ‘식물의 일생’으로 볼 수도 한다. 갑(甲)은 갑갑한 껍질을 뚫고 씨앗이 발아하는 모습, 을(乙)은 온기를 받아 씨앗이 땅을 뚫고 나오는 모습, 병(丙)은 밖으로 나와 자란 줄기가 가지를 뻗는 모습, 정(丁)은 우뚝 자라 정정한 모습, 무(戊)는 무성하게 자란 모습, 기(己)는 열매 맺어 드리운 모습, 경(庚)은 추수하는 농기구, 신(辛)은 열매를 자르거나 쪼개는 도구, 임(壬)은 종자 씨, 계(癸)는 파종 등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농경사회 기준으로 성(成) 자를 보면, 우뚝 자란 식물을 뜻하는 정(丁)에서, 성장의 완성을 의미하는 ‘무성하다’는 의미의 무(戊)까지 무탈하게 가꾼 것을 성공(成功)으로 본 것이다.
그런데 왜 여기에서 정(丁)과 무(戊), 그리고 성공을 이야기하는가. 바로 2017년이 정유년(丁酉年)이고 2018년이 무술년(戊戌年)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대한민국은 이 두 해를 잘 넘겨야 진정한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는 성공 국가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오는 정유년이 각별한 해로 인식되는 것은 대한민국이 성공으로 가느냐, 못 가느냐의 갈림길에 서는 중요한 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병신년(丙申年)이 저물고, 정유년(丁酉年) 새해가 밝아온다. 엄밀히 말하면 고대에는 태양이 부활하는 동지(冬至)부터가 새해였고, 음력으로 치면 정월 초하루 설날부터가 정유년 새해이다. 따라서 12월 31일 밤에 ‘제야(除夜)의 종소리가 울린다’고 하면 틀린 말이다. 제야는 어디까지나 음력으로 ‘섣달 그믐날 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12월 31일은 ‘끝날’로 부름이 어떨까 하고 제시해 본다. ‘끝’이란 말은 시간, 공간, 사물 따위에 두루 사용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해(日, sun, daytime)’가 길어졌다가 짧아지는 동안을 ‘해’(年, 歲, year)라고 하고, ‘달(月, moon)’이 밤에 나타나 커지다가 이지러져 사라지는 동안을 ‘달’(月, month)이라 한다. 물론 학교에서는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동안을 ‘한 해’라 하고, 이를 다시 ‘열두 달’로 나눈다고 배웠다. ‘해’의 고어 ‘ㅎㆎ’는 ‘ㅎㆍ이’의 준말이다. ‘ㅎㆍ이’의 원형 ‘ㅎㆍㄷ’은 영어 ‘hot’과 발음이 비슷해 감탄하게 된다. ‘희다’(白)의 고어 ‘ㅎㆎ다’는 ‘ㅎㆎ’라는 명사에서 전성된 것으로 보인다. 해는 빛으로 일을 ‘ㅎㆍ고’, 달은 매일 크기를 조금씩 ‘달리’ 하면서 자태를 뽐낸다. 여기에서 해는 ‘하다’와 달은 ‘다르다’와 의미상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고 추정해 본다.
공전 각도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서울을 기점으로 동지를 지나 하지까지는 매일 약 1분 42초씩 낮이 길어지고, 그믐 지나 보름까지 달이 떠 있는 시간은 매일 약 48분씩 길어진다. 이는 인간의 삶도 매일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우주의 가르침이 아닐까.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성경 로마서 12장 2절 말씀이다.
그래도 해는 뜬다. 동지 지난 태양은 조금씩 더 밝은 미소로 다가온다. 정유년(丁酉年)의 색깔은 적색이므로 붉은 닭띠의 해가 된다. 내년의 트렌드 키워드는 ‘치킨런’(chicken run)이라는데, 과연 우리 닭이 날아올라 높은 울타리 밖으로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까. 공교롭게도 닭의 해를 코앞에 두고 오리와 함께 겪는 AI 강타는 최단 시간에 최악의 피해를 내고 말았다. 닭고기를 생산하기 위한 육용계(肉用鷄)는 물론 달걀을 생산하기 위한 산란계(産卵鷄)와 번식용인 산란종계(産卵種鷄)마저 대량 도살 처분됐다.
경북과 제주를 제외한 전국의 농장으로 퍼진 AI 영향으로 지방 정부들은 끝밤의 타종식을 비롯한 새해 해맞이 행사를 잇따라 취소하고 있다. 포항시 남구 호미곶과 영덕군 삼사해상공원에서 매년 개최하던 해맞이 행사도 이번에는 취소한다고 밝혔다. 울산의 간절곶, 창원시의 철새도래지인 주남저수지도 예외가 아니다.
정유년(丁酉年) 닭띠 해는 일요일로 시작하여 일요일로 끝난다. 평년(平年)이므로 365일이고, 52주(週) 하고 하루가 남으므로 1월 1일과 12월 31일은 같은 요일이 된다.
그런데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요일(曜日,ようび)이란 명칭은 ‘빛나는 일본’의 의미가 숨어 있기 때문에 알고 나면 사용하기가 껄끄러워진다. 더구나 일요일(日曜日, にちようび)은 ‘해가 비치는 일본’의 의미가 된다. 그렇다고 주일(主日)이나 안식일(安息日)이라 하면 기독교 냄새가 강하게 다가온다. 물론 지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일(日)·월(月)에다 태양계 행성 이름이자 오행(五行)에 해당하는 화(火)·수(水)·목(木)·금(金)·토(土)를 더하여 일주일(一週日)을 이룬다고 보아 넘길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한글 단체에서 제시하고, 일부 대학가에서 사용한 바 있는 순우리말 요일 이름을 사용함직도 하다. 일요일은 ‘해날’ 또는 ‘밝날’, 월요일은 ‘달날’, 화요일은 ‘불날’, 수요일은 ‘물날’, 목요일은 ‘나무날’ 또는 ‘남날’, 금요일은 ‘쇠날’, 토요일은 ‘흙날’ 식으로 써도 좋겠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함을 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 한다. 사실 세월은 우리가 맞이하고 보내는 것이 아니라 저 스스로 알아서 오갈 뿐이다. 그래도 근하신년(謹賀新年)의 뜻으로 붓을 잡아 본다.
해 뜨는 나라, 동방에서 닭이 우나니 ‘계명동방(鷄鳴東邦)’이로다. 그 수탉의 울음소리 세상에 퍼져 온 천하가 밝아오길 바라나니 ‘웅계일창천하백(雄鷄一唱天下白)’이로다. 인간을 위해 태어나, 인간을 위해 살다가, 인간으로 인해 죽어간 닭이여. 지구 위의 모든 닭이 하루빨리 AI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기쁜 소식을 전해 주길 바라는 뜻에서 군계보희(群鷄報喜)로 붓을 놓는다.
권상호 서예가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