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이면 명백한 불법행위
조직기강 다잡는 게 우선 과제 국가정보원이 ‘문화체육계 블랙리스트’와 ‘삼성 합병’에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다. 국정원 댓글 사건 재판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또다시 의혹에 휩싸여 파장이 만만치 않다. 전직 국정원장 집까지 압수수색당했다니 불똥이 어디로 튈지 가늠하기 어렵다.
국정원이 만든 문화예술계 반정부 인사 동향 보고서를 토대로 청와대가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정황을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파악해 수사 중이라고 한다. 국정원 정보관과 문화체육관광부 직원들이 주고받은 각종 문건과 메시지 등을 분석한 결과 국정원이 문체부와 수시로 연락하면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활용하는 데 개입한 흔적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특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되고 실행된 시기로 보이는 2014년 10월~2015년 1월 당시 국정원장으로 있던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집을 압수수색했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국정원 보고서를 바탕으로 청와대가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문체부는 청와대 지시를 받아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사들에게 불이익을 줬다는 얘기가 된다.
국정원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삼성물산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의 내부 동향을 파악해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국정원 직원이 2015년 6~7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게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투자위원회 위원들의 성향이나 합병 찬반을 둘러싼 국민연금 내부 분위기 등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사실로 밝혀질 경우 국정원은 직무 범위를 벗어난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국정원 신뢰 문제와 직결된다. 댓글 사건 파문으로 궁지에 몰렸던 국정원은 박근혜정부 출범 후 ‘정치개입 불용’을 거듭 약속했다. 이병기 전 국정원장은 “‘정치관여’ 네 글자는 머릿속에서 지우겠다”는 말까지 했다. 최순실 게이트에서 국정원 이름이 자꾸 거론되는 것을 보면 빈말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특검은 진위를 철저히 가려 사실로 드러나면 관련자를 엄중 처벌해야 한다. 국정원의 조직적 개입인지, 직원 개인의 일탈 행동인지도 명백히 규명해야 한다.
국정원은 수사 결과와 관계없이 조직 기강을 다잡아야 한다. 국정원장마다 취임 일성으로 “순수한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겠다”고 했고 지난해 원훈까지 바꿔가며 분위기 일신에 나섰는데도 직원들이 엉뚱한 곳에 한눈판다면 조직 내부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국가안보가 위협받는 상황이다. 이럴 때일수록 국가안보의 최일선에 있는 국정원이 흔들림없이 맡은 바 소임을 다해야 한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