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스터’ ‘판도라’의 파장
이젠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는 희망찬 새해되길 영화 ‘마스터’는 런던의 경찰이야기로 시작한다. 처칠이 탄 차가 신호위반을 해 교통경찰이 위반 딱지를 떼려 하자 운전기사가 총리의 전용차임을 알린다. 그러나 경찰은 ‘쫄지 않고’ 말한다. 나라의 법질서를 책임지는 총리 각하의 차가 교통신호를 어겼을 리 없고, 총리라도 신호위반이면 딱지를 떼야지 예외는 없다고. 경찰의 투철한 업무수행에 감명받은 처칠이 경찰청장에게 일계급특진을 요청하자 경찰청장은 말한다. 경찰청 내규에는 교통법규를 위반한 사람에게 딱지를 뗀 경찰을 특진시켜주라는 조항은 없다고.
처칠의 일화를 전하며 영화 속 특별수사팀장은 이렇게 덧붙인다. 영국의 경찰이 신뢰받는 건 그들이 해야 할 일을 하기 때문이라고. 영화는 희대의 사기꾼이자 다단계의 교주 조희팔 사건을 빗대어 사기, 로비, 돈세탁, 밀항, 위장사망, 살인으로 이어지는 검은돈의 흐름을 파헤친다. “이번 사건 완벽하게 마무리해서 썩어버린 머리 잘라낸다”며 수사팀장이 겨냥한 ‘썩어버린 머리’란 검찰과 국회, 그리고 그 윗선이었다.
정끝별 이화여대 교수·시인 |
헌재의 또 다른 탄핵 유형에는 박 대통령이 천명했던 ‘국민의 행복과 안전’과 위배되는 ‘국민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도 있다. 영화 ‘판도라’는 이 문제를 건드린다. 이 영화 또한 원자력발전소를 바라보며 노는 아이들의 대화로 시작한다. 원기둥 모양의 원전을 가리키며 한 아이가 묻는다. “저 건물 안에 뭐가 들어있게.” 전기 만드는 ‘로봇’, 뭔가를 끓이는 ‘밥솥’이라고 주장하는 아이들과 달리 장차 원전노동자가 될 어린 주인공은 말한다. “건물 안의 상자를 열면 큰일 난대이.”
울진, 월성, 고리, 영광에서 영덕과 삼척으로 계속될 원전들, 여기에 북한의 원전까지 합친다면 원전보유수 세계 5위, 밀집도 세계 1위의 핵위험지대가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다. 미국 스리마일, 소련 체르노빌,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보유국 순위와 일치하는 순서로 사고가 났다. 그다음은? 운전상의 인재(人災), 천재지변, 노후화, 지구상 최후의 분단국가, 게다가 한반도는 지진 안전지대도 아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원전사고로 아버지와 형을 잃고 늘 원전으로부터 도망가려 도모한다. 그러던 차에 지진으로 원전이 폭발한다. 주인공이 피폭된 채 더 큰 폭발을 막기 위해 원전으로 다시 들어가며 “우리가 나서지 않으모, 우리 가족들도 다 죽는 깁니더”라고 자신의 목숨을 걸 때, “사고는 저거들이 쳐놓고, 또 국민들 보고 수습하란다”라고 억울해할 때, “행복하고 싶은데,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래 죽어야 하노. 억수로 무섭단 말이다”라며 죽음 앞에서 절규할 때, 그 신파가 신파 이상의 감동을 주는 건 세월호와 메르스와 AI 바이러스 등이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의를 구현하는 수사관, 체포되는 범법자, 자신의 무능을 사과하는 대통령, 책임을 지는 원전소장, 다수를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노동자 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두 영화는 비현실적이다. 그런 주인공들이 지금 우리가 바라는 로망이라는 점에서는 또 동화적이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켄 로치 감독은 ‘2016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후 이런 소감을 남겼다.
“우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우리는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말해야만 한다.” ‘마스터’와 ‘판도라’의 감독과, 이 영화를 본 1000만 관객과 우리 모두의 새해 희망이기도 할 것이다.
정끝별 이화여대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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