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본질적 문제 접근 못해 / “과거 의혹 캐기에만 매몰” 지적 / 모르쇠·엉뚱한 질문… 끝까지 맹탕 현직 대통령 탄핵 사태 속에 진행된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는 한국 정치사에 의미가 작지 않다. 사안의 중대성, 증인 규모 등을 감안해 군사정부의 적폐를 폭로한 ‘5공 청문회’에 비견됐다. 9일로 역대급이라 불린 청문회가 막을 내렸지만 결과는 초라했다. 이번 청문회에선 일부 의혹을 규명하긴 했지만 1000만 촛불민심의 기대에는 턱없이 못 미쳤다. 국정농단의 발생 원인을 찾아 그런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국가시스템을 혁명적으로 변화시켜 달라는 게 국민적 열망이었다. 국정조사특위 위원들이 이 같은 민심을 반영해 박근혜정부의 과거 농단 형태를 파헤치는 데 골몰한 것은 당연한 본분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위원들의 질의에선 최순실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차기 정부에서 되풀이돼선 안 될 미래 리더십에 대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었다. 최순실 사태를 몰고 온 대통령 리더십, 관료·재벌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부각시킬 기회를 놓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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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7차 청문회에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자리 등이 비어 있다. 이날 청문회에는 증인으로 정동춘 전 K스포츠재단 이사장, 남궁곤 이화여대 교수가 참고인으로는 노승일 K스포츠재단 부장 많이 출석했다. 남정탁 기자 |
한국정치학회 한 관계자는 이날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나 김종덕 전 문화체육부 장관에게 ‘국정농단을 알았느냐, 몰랐느냐’, ‘블랙리스트를 알았느냐’는 걸 물어보는 것은 기본 책무”라며 “그들은 대통령 리더십, 관료 집단의 비정상적 행태를 가까이서 지켜본 인물인 만큼 ‘대통령, 관료 집단의 가장 큰 문제가 뭐였는지, 차기 정부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판단하는지를 물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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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텅 빈 증인석 국회 ‘최순실 게이트 진상 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특위’ 마지막 청문회가 열린 9일 오전 국회 청문회장에서 증인 2명(남궁곤 이화여대 교수, 정동춘 K스포츠재단 이사장)과 참고인 1명(노승일 K스포츠재단 부장)이 손을 들고 선서를 하고 있다. 이날 마지막 청문회에는 증인들이 대거 불출석해 청문회장이 텅텅 비어 있다. 남정탁 기자 |
야당 의원들은 국정농단 사건의 본질에서 벗어나 대통령의 추문 폭로에 휩쓸린 경향도 있었다. 이들은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해 대통령의 성형 의혹을 집요하게 추궁했지만 새롭게 드러난 사실은 별로 없었다. 이를 지켜본 야당의 중진 의원은 “대통령이 필러, 프로포폴을 맞았느냐 등을 따지느라 정작 그 시간에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마땅히 해야 했으나 하지 않은 일을 제대로 묻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도 “대통령의 잘못된 리더십과 권력기관 간 견제 부족이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문제인데 이에 대한 분석이 미흡했고 생산적인 국정운영 방안을 도출해 내지 못했던 점은 아쉽다”고 지적했다.
‘부실·맹탕 청문회’ 비판을 받는 것은 핵심 증인의 불출석과 뻔뻔한 ‘모르쇠’ 답변, 국회의원들의 전문성·준비 부족 등이 결합된 결과다. 사안의 핵심을 꿰뚫지 못하는 의원들의 ‘무딘 질의’가 증인들의 방어논리를 깨지 못했기 때문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통화에서 “전문성이 부족한 일부 의원들은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다르거나 엉뚱한 질문을 하는 등 꼴불견을 보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남상훈 기자 nsh2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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