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아픈 역사 통해 미래 헤아려야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에 설치된 일본군 ‘위안부’ 평화비(소녀상)를 부산 동구청에서 강제 철거한 뒤 전국적인 항의 빗발이 잇따르자 지난달 28일, 소녀상 재설치를 결정하게 됐다. 정부는 이제까지 일본 정부에 고수했던 태도와는 달리 동구청에 소녀상을 다른 장소로 이전할 것을 권유하는 입장을 밝히므로 결국 일본 정부의 요구에 굴복하는 외교 참사를 빚게 된 것이다.
이길연 다문화평화학회 회장 |
우리가 역사 앞에 머리 떨굴 일이 어찌 이뿐이겠는가. 우리나라가 국가적으로 열악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목숨마저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으로 흩어졌던가. 낯선 이국땅에서 겨우 목숨만 유지한 채 얼마나 유리방황했던가. 돌아오지 못한 영혼들이 어찌 ‘귀향’의 위안부뿐이랴.
재일본 한국교포는 일제 식민지정책의 산물로서 일제강점기 도일(渡日)한 한국인이다. 초기에는 일본의 경제적 수탈로 생계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1937년 중일전쟁 이후에는 일제의 징병과 징용정책에 의해 강제 연행됐다. 1945년 8·15 광복 당시 200만명에 달했던 재일 한국인은 일본의 패전과 함께 140여만명이 본국으로 귀환하고 나머지 60여만명이 계속 잔류하게 됐다. 현재에도 70만명이 넘고 있다.
고려인은 러시아를 비롯한 독립국가연합에 살고 있는 한국인 교포를 일컫는 말이다. 한국인들이 러시아로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1863년으로, 농민들이 두만강을 건너 우수리강 유역에 정착하였고 이어 1869년에는 4500여명에 달하는 한인이 이주했다. 스탈린의 이른바 대숙청 당시 연해지방의 한인들은 유대인 등 소수민족들과 함께 가혹한 분리 차별정책에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이주됐다. 당시 고려인 수는 17만5000여명에 달했다.
1992년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 외에 11개 독립국가로 분리되면서 고려인들이 거주하는 배타적인 민족주의 운동이 확산됐다. 이로 인해 고려인들은 다시 연해지방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으며, 현재 53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주와 이민이라는 용어는 결코 우리에게 낯선 단어가 아니다. 머지않은 우리의 역사 몇 장을 걷어내면 바로 드러나는 우리의 민낯이다. 쓰라린 역사 가운데 우리의 자화상을 비춰보고 주어진 우리의 미래를 헤아리는 지혜가 필요할 때이다.
이길연 다문화평화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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