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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이탈리아 정치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저서 ‘군주론’을 오랜만에 다시 들여다봤다.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다. 정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수많은 정치학 관련 서적들 가운데 ‘군주론’을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으로 꼽는다. ‘군주론’이 근대 정치학의 새 길을 열었다고 평가받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마키아벨리의 말로 들어보자.
마키아벨리 이전의 중세 정치철학자들이 가상 국가에만 관심을 쏟고 현실 세계는 외면했다는 비판이 담긴 말이다. 마키아벨리는 권력의 획득·유지·확장에 관한 ‘있는 그대로의 현실정치’를 중시한다. 그 결과 정치가 독립적인 탐구 영역이 된 것이다.
미국 정치철학자 셸던 월린은 ‘정치와 비전’에서 마키아벨리가 “정치 현상이 과거의 정치사상에 의해 형성된 폐쇄적인 환상에서 해방돼야 한다는 믿음을 지녔다”면서 “‘순수한’ 정치이론에 관한 최초의 위대한 실험을 전개했다”고 했다. 마키아벨리는 그의 시대에 정치제도나 사회구조가 급속히 바뀌는데 기존 정치 개념들로는 이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가질 수 있는 최선의 요새는 민중에게 미움을 받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나아가 “적대적인 민중으로부터 군주가 당할 수 있는 최악의 사태는 그들로부터 버림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 권력자가 무능하고 현명하지 못하면 이런 꼴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군주가 강력하고 현명하면 국민에 의지할 수 있다고 마키아벨리는 말한다.
“민중을 토대로 해 권력을 장악하고 민중을 부리는 법을 알며, 용맹이 뛰어나서 역경에 처해도 절망하지 않으며 그의 기백과 정책에 의해서 민중의 사기를 유지할 수 있는 군주라면 민중에게 배반당하는 일은 결코 없으며 자신의 권력이 확고한 터전 위에 서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 현명한 군주라면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지 민중이 정부와 자기를 믿고 따르도록 조치를 취해야 하며, 그 경우 민중은 그에게 항상 충성할 것이다.”
대통령이 ‘군주론’을 읽고 정치에 대해 깊이 성찰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랬다면 국정농단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처럼 참담한 처지에 놓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정치 현실과 벽을 쌓고 국민과의 소통을 끊은 채 비선실세에 둘러싸여 허송세월했다. 자업자득이다. ‘군주론’의 맨 앞에 있는 ‘헌정사’의 한 구절을 들려주고 싶다.
“민중의 성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군주가 될 필요가 있고, 군주의 성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민중의 한 사람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한 사람 입장에 서서 국정을 바라볼 생각을 한 번이라도 했을까. 신권정치를 펼쳐 피렌체를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만들려다 화형당한 수도사 지롤라모 사보나롤라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평가를 연상하게 한다.
“사보나롤라는 민중의 신뢰를 상실하자마자 새로운 질서와 더불어 몰락하고 말았다. 그는 그를 믿지 않았던 자들을 믿게 할 수단도, 그를 믿었던 자들의 지지를 유지할 수단도 없었던 것이다.”
정치철학자 곽준혁은 ‘마키아벨리 다시 읽기’에서 마키아벨리가 사보나롤라를 비판한 이유로 “시민들의 정의감을 ‘시민적 자유’와 ‘공동체 존속’과는 전혀 상관없는 불필요한 목적에 분출시켜 완전히 소진시켜 버린 것, 그리고 스스로가 제정한 법을 위반함으로써 자기의 통치를 ‘정치적 권위’의 행사가 아니라 ‘물리적 힘’의 행사로 인식시켰다는 것”을 들었다.
정치학자 강정인은 ‘마키아벨리의 이해’의 ‘후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진실을 감당할 용기가 없기 때문에 또는 진실을 알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알고도 모른 척하며, 친밀한 사이일수록 속고 속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는 개인과 개인의 사사로운 관계에도 적용될 뿐만 아니라 집단적인 자기 최면이나 자기 기만 형태로 공동체에도 적용된다.”
정치인과 국민 모두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집권자는 권력의 적나라한 실태를 드러내려 하지 않고, 국민은 그러한 실태를 정면으로 바라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권력 행사와 관련한 비리나 부패가 쉽사리 은폐된다. 국정농단 사태의 재발을 막으려면 자기 최면이나 자기 기만에서 벗어나 정치현실의 진면목을 직시해야 하고, 또 그것을 감당할 용기를 지녀야 한다.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고 유지해나가려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박완규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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