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구조 책임 다했다면서 박 대통령 부실·황당한 답변서 / ‘7시간 행적’ 불신만 더 키워… 국민은 묻는다 “진실은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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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8시20분쯤 서울시교육청 기자실 도착. 30분가량 조간신문 기사들 체크하고 당일 출고예정 기사 챙겨 사내에 보고. 이후 매주 수요일 오전 중 마감해야 하는 교육 관련 기획기사를 약 2시간 동안 정신없이 작성. YTN 뉴스 화면을 응시하던 타사 기자들로부터 “2시간 전에 수학여행단 학생들을 태운 여객선이 사고 나 침몰 중”이라는 얘기를 뒤늦게 듣고 놀람. 조금 있다가 방송에서 “학생들 전원 구조”라고 한 데 이어 교육당국이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됐다’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보냄. 기자들 ‘천만다행’이라고 가슴 쓸어내리며 교육청 구내식당서 이른 점심을 먹고 낮 12시쯤 기자실로 돌아옴. 그런데 ‘전원구조는 오보였다’는 소식에다 세월호가 완전 침몰 직전인 방송 화면 보고 모든 기자 경악. 상황 파악차 교육부 관계자들에게 전화 돌린 뒤 비상체제로 전환한 회사에 오후 2시쯤 복귀. 이어 자정 넘어서까지 세월호 참사 관련 취재와 보도에 집중.
교육 분야 담당 기자로 일하던 2014년 4월16일 수요일의 행적이다. “그날은 특별한 날로 대부분 국민은 자기가 무엇을 했는지 떠올리면 각자 행적을 기억할 수 있을 정도의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날”이라던 이진성 헌법재판관의 말처럼 또렷하다. 이 재판관은 지난달 22일 탄핵심판 첫 준비기일에 이같이 언급한 뒤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혹’과 관련해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행적에 대해 남김없이 밝혀 달라”고 요구했다. 탄핵소추 사유 중 하나인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직무 유기 및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다. 박 대통령은 참사 당일 관저 집무실에서 오전 10시쯤 첫 보고를 받은 뒤 오후 5시15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도착한 때까지의 7시간 행적을 정리한 답변서를 지난 11일 제출했다. 그러나 헌재는 혀를 찼다. 당시 박 대통령과 유관기관 간 단순 보고·지시 내용 중심의 답변서였던 탓이다. 이마저 앞뒤가 안 맞거나 허술하기 짝이 없는 대목투성이였다. 그런데도 대리인단은 “(박 대통령이) 피해자 구조와 사태 수습을 위해 최선을 다해 대처했다”며 “세월호 사고 원인이 대통령의 7시간인 것처럼 몰아가는 악의적인 괴담과 언론 오보로 국민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고 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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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은 사회부 차장 |
과연 그럴까. 나라 안에 큰 사건 사고가 발생하면 관계기관의 첨단 정보망과 보고체계를 통해 국정 컨트롤타워인 청와대에 즉각 보고된다. 사안에 따라 대통령이 신속히 결단해줘야 할 대응방안이 필요한 때가 있어서다. 세월호 침몰이 바로 그런 경우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박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발생과 ‘전원구조 오보’ 소식을 일반 국민보다 각각 1시간, 3시간30분가량이나 늦게 접했다. 더욱이 핵심 참모들은 사고 초기 대통령의 소재를 몰라 허둥대고, 대통령은 수백명의 생사가 경각을 다투는데도 ‘나홀로’ 관저에만 머물렀다. 버선발로 청와대 상황실이나 본관 집무실로 뛰어가든지 당장 참모들을 관저 집무실로 불러 대책을 세워야 할 판에 독수공방하면서 ‘띄엄띄엄’ 서면·전화 보고나 받고 지시를 내렸다. 기가 차고 어이가 없다. 그래서 국민과 헌재는 ‘그날 도대체 뭘 하고 있었길래 그랬냐’라고 묻는 것이다. ‘당신 때문에 세월호가 침몰하고 304명의 희생자가 생겼다’는 게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할 대통령의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 알고 싶은 거다.
그러나 그가 1001일 만에 밝힌 세월호 7시간은 단순한 시간대별 일지에 불과했다. 되돌아보면 대부분 국민이 선명하게 떠올리는 ‘그날의 행적’에 대해 정작 대통령은 말을 더듬거나 얼버무렸다. 솔직히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게 아니고서야 납득이 안 되는 처사다. 그래놓고 언론 탓도 모자라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고 우긴다. ‘유체이탈화법의 끝판왕’이라고 비난받을 만하다. 박수 받고 떠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여러분이 나를 더 좋은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며 미국 국민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탄핵으로 물러날 위기에 놓인 박 대통령에게 대한민국 국민은 어떤 존재인지 궁금하다.
이강은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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