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전 총장은 이날 오전 박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2분가량 귀국 인사를 했다고 이도운 대변인이 밝혔다.
반 전 총장은 통화에서 “직접 찾아뵙고 인사드려야 하는데, 상황이 이렇게 돼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박 대통령이 권한정지 상태여서 대면은 부담스럽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전달했다. 이어 “부디 잘 대처하시길 바란다”며 국정농단 사태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이후 등돌린 국민 여론에 잘 대처하라는 안부 인사를 건넸다.
또 박근혜정부가 반 전 총장 재임 당시 기후변화협약 체결 등에 적극 지원해준 것에 감사를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박 대통령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10년간 노고가 많으셨다. 그동안 많은 성과를 거두셨다”며 “건강 유의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란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 전 총장은 이날 거제와 부산을 차례로 방문하며 전국 민생탐방에 돌입했다. 그는 지난 12일 귀국 이후 강행군을 이어갔지만 그간 일정이 국립현충원 참배, 고향 방문 등 통상적인 행보임을 고려할 때 사실상 이날부터 지방 방문이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반 전 총장이 첫 지방 행선지로 거제·부산을 택한 것은 문 전 대표를 겨냥한 노림수라는 해석이 나온다. 거제는 문 전 대표의 출생지이고, 부산은 문 전 대표의 고향이자 국회의원 당시 지역구(부산 사상)이다.
문 전 대표의 정치적 고향을 공략해 두 사람 간 경쟁 구도를 부각시키려는 시도라는 분석이다. 반 전 총장이 귀국 이후 문 전 대표의 ‘정권교체’에 맞서 ‘정치교체’를 내세우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등에서 문 전 대표와 상반된 입장을 보이며 지속적으로 각을 세우는 것 또한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왼쪽)이 16일 최근 조선업 침체로 위기에 직면한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을 방문해 근로자들의 손을 잡으며 격려하고 있다. 거제=연합뉴스 |
반 전 총장 측은 이날 일정에 대해 “정치적 의도 없는 민생 행보일 뿐”이라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이날 거제의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 이어 한국전쟁에 참전한 유엔군 전사자가 안장된 부산의 유엔기념공원과 국제시장·자갈치시장을 차례로 방문했다.
대선 출마와 관련해 함구 중인 반 전 총장은 이날 사실상의 대권 도전으로 읽히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그는 조선소에서 협력사 관계자들을 만나 조선산업 침체 해결을 위해 “정상외교 등 외교적 채널을 통해 (선박 수출을) 촉진할 수 있다. 기회가 된다면 제가 할 수 있겠다”고 강조했다. 기자들에게는 전날 밝힌 사드 배치 찬성 입장을 재확인하고, 논란이 된 부산 소녀상 설치와 관련해서는 “한·일 간 합의가 이뤄진 것은 환영할 만하다”면서도 “만약 소녀상 철거가 관련돼 있다면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수 기자 samenumb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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