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대심판정에 선 최씨는 팔색조의 연기자 같았다. ‘모르쇠’ 작전을 쓰다가 신문조서 효력에 대해 “검찰과 특검이 너무 강압적이고 압박적이라 거의 죽을 지경이다”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다. 소추위원 측이 이권 개입 여부를 추궁할 때에는 “한 푼도 받은 적 없다”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정작 자신의 딸 정유라씨에게 승마 지원을 한 기업은 강탈당했다고 호소하는데 아무것도 받은 게 없다니 대체 말이 되는가.
변호인단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최씨 측 변호인단은 소추위원 측 질의에 대해 “수준 미달”이라고 비판했다. 자신들이 2차 변론 때 촛불 민심을 폄훼하고 예수와 소크라테스를 들먹였다가 국민들로부터 ‘수준 미달’이란 평가를 받은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행동이었다.
최씨로서는 형사재판에 불리한 진술은 아예 하지 않겠다고 작심했을 수 있다. 탄핵심판을 지연시키고 박 대통령을 지키겠다는 속셈일지도 모른다. 의도야 어쨌든 간에 국정을 파탄 내고서 억지궤변만 계속 늘어놓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지금이라도 솔직히 털어놓고 국민에게 용서를 청하는 게 자신의 죄를 더는 일이다.
이제 진실 규명의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박 대통령은 최씨가 부인한 국정농단의 실상을 자세하게 국민에게 털어놓아야 한다. 검찰 조사와 헌재 출석을 거부한 채 일방통행식 기자간담회를 열어 변명을 늘어놓는 것은 국가 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다. 늦었지만 박 대통령이 헌재에 출석해 소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헌정질서의 수호자로서 최소한의 책무를 기대한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