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6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대변인 이규철(53) 특검보가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발표하며 ‘정의를 세우기 위해’라고 이유를 밝힌 것은 삼성그룹 등 재벌 개혁을 원하는 국민 여론에 부응하면서 영장 발부권을 쥔 법원을 강하게 압박하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뇌물을 받았다는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 뇌물 공여자로 지목된 삼성 측도 관련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어 18일 법원 영장실질심사는 물론 향후 재판 과정에서 뜨거운 법리 공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최순실 게이트'와 박근혜 대통령의 비위 의혹을 수사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 대변인 이규철 특검보가 16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기자실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방침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
특검팀은 이 부회장 구속영장에 뇌물공여 액수를 430억여원으로 특정했다.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204억원, 비선실세 최순실(61·구속기소)씨 딸 정유라(21)씨의 승마 훈련 지원에 쓰기로 약정한 210억여원 등을 모두 더한 금액이다. 눈길을 끄는 건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까지 뇌물에 포함시킨 점이다. 앞서 검찰이 두 재단 출연금을 박 대통령의 강요에 못 이겨 낸 돈으로 판단해 뇌물 대신 직권남용 및 강요 혐의를 적용한 것과 다른 점이다.
두 재단이 모은 기금은 총 774억원이며 출연 기업도 50군데에 이른다. 자칫 국내 대기업 거의 전부가 뇌물공여 혐의 피의자로 특검에 입건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를 의식한 듯 특검팀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기업 모두가 수사 대상인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부정한 청탁 여부 등을 감안해 최소 규모로 처리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삼성은 ‘박 대통령의 협박과 강요·공갈에 가까운 요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액을 지원했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이 뇌물인지, 강요 때문에 빼앗긴 돈인지를 놓고 향후 영장심사와 재판에서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특검팀이 박 대통령과 최씨에 대해 제3자 뇌물죄 대신 일반 뇌물죄를 묻기로 한 점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특검팀 관계자는 “박 대통령과 최씨가 이익을 공유하는 관계라는 점에 대해 충분한 객관적 물증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과 최씨는 즉각 반론을 펴고 나섰다.
박 대통령 측은 “박 대통령과 최씨가 경제적 이익을 공유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특검 발표 내용을 반박했다. 최씨도 이날 박 대통령 탄핵심판 5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대통령과 경제적 이해관계를 같이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과 최씨가 경제적으로 ‘한몸’인지 여부는 박 대통령의 뇌물 혐의를 밝힐 핵심 고리로서, 남은 수사기간 내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 최순실, 이재용 부회장 |
특검팀은 막판까지 이 부회장과 함께 삼성 최고 지휘부인 최지성(66)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장충기(63)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박상진(64) 삼성전자 사장을 묶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결국 영장 청구는 이 부회장 1명으로 최소화했다.
앞서 특검팀은 “최 부회장 등 3명의 진술이 이 부회장 진술과 일부 어긋난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최 부회장 등 3명이 “최씨 일가 지원은 이 부회장이 모르는 일이고 밑에서 다 알아서 했다”고 진술할 것을 기대했는데 빗나갔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특검팀 관계자는 “최 부회장 등 3명은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밝혀 이런 분석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여전히 “최씨 일가 지원은 실무자들한테 일임했다”는 입장이어서 법원 판단이 주목된다.
이 부회장 구속영장에 횡령 혐의를 기재한 것은 특검팀의 ‘승부수’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빼돌린 회삿돈으로 대통령 측에 뇌물을 전달했다는 혐의 내용은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 기업 총수가 회사 재산을 일종의 사금고로 여기는 후진적 풍토 근절을 위해서라도 구속수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릴 수 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