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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포퓰리즘 홍수 속 '표 장사' 수단으로 전락한 병역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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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1-22 08:05:00 수정 : 2017-01-21 16:5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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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진행중인 상황에서 조기 대선이 가시화되자 대선 주자들의 표심잡기 경쟁이 한층 뜨거워지고 있다. 탄핵안 가결 여파로 선거 운동 준비에 주어진 시간이 예전에 비해 짧아지면서 정책 구상에 필요한 시간이 부족해지자 ‘일단 발표하고 보자’는 식의 포퓰리즘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육군훈련소에서 훈련중인 신병들. 육군 제공
포퓰리즘 공약 중 가장 많은 논란을 빚고 있는 것이 군 복무기간 등 병역 관련 정책이다. 군 입대를 앞둔 청년들과 입영 대상 자녀를 둔 부모들을 합치면 100만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한 표가 아쉬운 대선 주자 입장에서는 병역 정책에 ‘올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방개혁과 인구 구조 변화, 군 인력 운용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 없이 ‘일단 발표하고 보자’식의 묻지마 공약을 제시하며 표 장사에 나서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 모병제, 복무기간 단축, 전문병사까지 ‘각양각색’

군 복무기간을 단축하는 문제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불을 붙였다. 문 전 대표는 지난 17일 출간한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군 복무기간을 1년으로 단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른 대선주자들이 문 전 대표의 주장을 비판하는 등 논란이 커지자 “군의 현대화로 병력의 규모를 줄일 수 있으면 병사의 복무기간을 12개월까지 단축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원론적 발언”이라며 “국방개혁 방향을 언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복무기간 단축’ 프레임을 문 전 대표가 선점할 조짐을 보이자 다른 대선 주자들도 앞다투어 정책 경쟁에 나섰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저서 ‘이재명, 대한민국 혁명하라’에서 “병력을 13만명 줄이고 10만명의 전문 전투병을 모집하면, 의무 복무병이 현재 43만명에서 20만명으로 줄어들어 복무기간을 현재의 21개월에서 절반인 10개월 정도로 단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도 16일 국회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2005년 태어난 아이들이 2025년이면 입대할 수 있는데 현재 병력구조로는 40개월을 복무해야 국방의 공백이 생기지 않는다”며 “2022년까지 병사월급을 최저임금의 50%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하고, 2023년부터 징병제를 모병제로 전환하겠다”고 공약했다. 

복무기간 단축이 이슈로 부상하면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17일 “민주주의 선거에서 후보는 정책의 방향과 가치를 이야기해야 한다”라며 “튼튼한 안보체계를 가질 것이냐를 두고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 안보에 대한 원칙을 이야기하면서 군 복무 기간 이야기도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은 20일 창당 준비위 회의에서 “대선 때마다 3개월, 6개월씩 복무기간이 줄어들면 군대가 유지가 안된다”며 “군 복무기간 단축을 공약으로 내거는 행태를 그만두기를 제안한다”고 밝혔다.

◆ 복무기간 단축도 전문병사도 현실성 떨어져

대선 주자들의 병역 관련 정책 제안은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을까. 군 안팎에서 작성한 자료들을 종합하면 실현 가능성은 낮다는 게 중평이다.

지난해 중국어선 단속을 위해 한강 하구 순찰에 투입된 해병대원들이 전방을 주시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2000년대부터 떨어지기 시작한 출산율의 여파로 육군 기준으로 21개월인 현재 복무기간을 유지할 경우 2020년을 전후로 병역 자원이 급격히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2020년대 초반에는 입대자가 제대 인원보다 2만3000여명이 부족할 것으로 군은 보고 있다. 복무기간이 1개월 줄어들면 실제 병력은 1만명 정도 감소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복무기간을 10~12개월로 줄이면 2020년에는 부족한 병력이 10만명에 달할 수 있다는 얘기다. 병사의 숙련도도 문제다. 한국국방연구원(KIDA) 분석에 따르면 병사가 일정 수준의 숙련도에 도달하려면 9~16개월이 소요된다. 복무기간을 단축하면 훈련만 받다가 전역하는 셈이다.

일부 대선 주자들은 복무기간 단축에 따른 병력부족을 전문병사 모집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효성이 낮다. 군 당국은 전차 등 첨단장비 운영에 필요한 전문 병사를 확보하기 위해 유급지원병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유급지원병 유형-1은 병장으로 복무를 마친 병사가 월 145만원을 받고 하사로 6~18개월 연장 복무한다. 희망자는 현역병 복무 중 신청한다. 유형-2는 병장으로 복무를 마치고 월 205만원을 받고 하사로 12개월(공군), 13개월(해군), 15개월(육군) 연장 복무한다. 입대 전 병무청을 통해 신청한다. 국회 국방위 소속 국민의당 김중로 의원이 지난해 국방부에서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유형-1은 매년 운영률이 낮아지면서 2015년에 57%를 기록했다. 유형-2도 운영률이 매년 3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전문병사 모집을 위해 만든 제도가 유명무실해지고 있는 셈이다. 군 관계자는 “사회 진출 시기가 늦어질 것에 대한 우려와 부사관과의 대우 차이 등이 유급지원병 기피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 제반 여건 종합적 고려한 정책 대안 절실해

대선 주자들이 표심잡기에만 몰두해 실현 가능성이 부족한 병역 정책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안보 상황이나 인구 구조 변화 등에 따라 군 복무기간을 줄일 수는 있지만 선거 국면에서 표를 잡기 위해 이용하는 것은 큰 문제라는 것이다.

군 안팎에서는 ‘군 복무=낭비’라는 인식을 깰 수 있는 합리적인 정책 대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학생의 경우 군 복무기간은 21개월(육군 기준)이지만 입대시기에 따라 수개월 동안 휴학을 해야 한다. 제대 이후에도 복학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입대와 제대 전후 휴학 및 복학 시기까지 고려하면 3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된다. 취업과 사회 진출에 필요한 시간이 그만큼 부족해진다. 이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실효성을 잃고 있는 유급지원병 제도를 비롯한 전문병사 외에 다른 대책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도하훈련에 참가한 20사단 소속 전차부대. 육군 제공
가장 먼저 제시되는 것은 학군단(ROTC) 후보생이 임관 전 받는 기초군사훈련처럼 대학 방학 기간을 이용해 병영에서 일정 기간 훈련을 받으면 그 기간만큼 군 복무로 인정해주는 방안이다. 입대 대상자인 대학생은 본격적인 군 복무를 앞두고 병영 생활을 미리 체험함으로서 입대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고, 복학과 사회 복귀 시점도 앞당길 수 있다. 군은 갑작스런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병사들의 어려움을 줄이고 병사의 숙련도를 높이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병무청은 지난해 말부터 입대 뒤에 받는 신체검사에서 탈락해 귀가하는 경우에도 해당 기간만큼 군 복무로 인정받는 병역법 개정안을 시행하고 있어 국민적 합의만 있으면 충분히 시행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강원도 평창 황병산에서 설한지 훈련중인 특전사 대원들. 육군 제공
또다른 방안으로는 입대 시기를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 있다. 현재는 입대하고 싶은 날짜 등을 본인이 선택한다. 문제는 복학 시점을 고려해 입대 시기를 고려하다보니 특정 날짜에 입대 희망자가 몰리면서 ‘입대전쟁’을 치르게 된다는 점이다. 한 예비역 장군은 “현역 시절 군 관련 민원 중에 가장 난감한 게 입대 시기 조정 민원”이라며 “다들 똑같은 시기에 입대를 희망하다보니 입대 경쟁이 치열해 고위급 장군도 손을 쓸 수 없는데, 무작정 민원을 해결해달라고 해 난감할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 입학 후 2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입대하는 방안이 제안되고 있다. 입대 시기를 예상할 수 있으며 복학을 위해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단축돼 청년들의 시화 진출 시점을 앞당길 수 있는 실질적인 혜택이 된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고졸 취업자를 위한 별도의 대책이 필요하다.

이번 대선은 인기를 의식한 포퓰리즘적 공약이 제시될 가능성이 다른 때보다 높다. 조기 대선으로 선거 운동 기간이 짧은데다 정책 수립에 필요한 시간도 많지 않다. 반면 정치 개혁에 대한 국민적 기대는 크다. 대선 주자들의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군 복무기간 단축이 빠질 리 없다. 우리나라가 중남미처럼 전면전 위협이 없는 국가라면 1년 미만의 징병제나 모병제도 가능하다. 하지만 서울 바로 북쪽에 120만명의 대군이 도사리고 있는 현실에서 군 복무기간 단축을 함부로 단축하기는 어렵다. 군 복무기간 단축의 궁극적인 목적은 청년들의 사회 진출 시기를 앞당기자는 데 있다.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어려움을 해소하면서 군 규모와 전투력을 유지하는 방안을 마련하려면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동의할 수 있는 종합적인 공약이 마련되어야 한다. 실행 가능성이 있는 공약은 공허하다. 공약 이행도 대안 마련도 실패한 정권은 국민에게 해악만 끼칠 뿐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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