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치치 ‘노장 만세’… 18년 만에 4강행 ‘파란’

호주 오픈서 세리나와 결승행 맞대결 / 1999년 윔블던 4강 돌풍 / 아버지 폭력… 부상… 가난… 연이은 불운 속 자취 감춰 / 2007년 다시 코트로 돌아와 / 35세 나이에 세기의 이변

1999년 윔블던 테니스대회 3회전. 17세 소녀가 9차례나 그랜드슬램 대회를 제패했던 강자 모니카 셀레스에 당돌히 맞서 기어이 승리를 잡아냈다. 소녀의 이름은 미르야나 류치치(크로아티아·사진). 그는 8강에서도 전년도 윔블던 준우승자 나탈리 토지아를 잡아내며 윔블던 4강에 오르는 대이변을 연출했다.

그러나 류치치의 파란은 단 한번으로 끝났다. 이후 연이은 부상과 가난, 개인적인 문제 등이 겹치면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고 2002년 US오픈 1회전 탈락을 끝으로 메이저대회에서 모습을 감췄다. 2006년 류치치는 한 신문과 인터뷰에서는 아버지에게 가정 폭력을 당한 사실 등을 털어놓기도 했다. 연이은 불운 때문에 한때 세계 테니스계를 이끌어갈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한 선수는 서서히 잊혀져 갔다.

2000년대 중반 사실상 선수 활동을 하지 않은 류치치는 2007년 다시 코트로 돌아왔다. 이후 하위랭커들이 주로 출전하는 서킷 대회 위주로 활약하며 잃어버린 꿈을 되찾기 위해 몸부림쳤다. 류치치는 2011년 이탈리아계 남편과 결혼해 ‘류치치 바로니’가 된 뒤 본격적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2010년에야 윔블던을 통해 메이저대회에 복귀한 뒤 서서히 옛 실력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2014년에는 US오픈 16강에 진출하기도 했다.

올해 35세를 맞은 류치치 바로니가 마침내 ‘사고’를 쳤다. 9번째 출전한 올해 호주오픈 2회전에서 세계랭킹 3위 아그니에쉬카 라드반스카(27·폴란드)를 물리치는 이변을 연출한 데 이어 준준결승에서 카롤리나 플리스코바(25·체코)를 2-1(6-4 3-6 6-4)로 제압하고 4강에 진출했다. 플리스코바는 세계 5위로 세계 79위인 류치치 바로니보다 74계단이나 랭킹이 높은 강자다. 플리스코바와 치열한 경기를 이어가던 류치치 바로니는 3세트 게임스코어 3-4로 뒤진 상황에서 다리 부상으로 메디컬 타임아웃을 부르는 등 위기에 빠졌다. 그러나 류치치 바로니는 자신의 가방에서 조용히 묵주를 꺼내들고 숨을 고른 뒤 이후 오히려 내리 세 게임을 따내며 지난해 US오픈에서 준우승한 강호 플리스코바를 따돌렸다. 류치치 바로니는 경기가 끝나자 코트에 무릎을 끓고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류치치 바로니의 메이저대회 4강 진출은 1999년 윔블던 이후 18년 만의 일이다. 그는 경기 뒤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나를 사연이 있는 사람으로만 알게 되는 것도 싫다”며 “모든 역경을 참아낸 훌륭한 파이터로 기억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류치치 바로니는 4강에서 오랫동안 테니스의 ‘여제’로 군림하고 있는 세리나 윌리엄스(35·미국·세계랭킹 2위)와 상대한다. 막바지에 다다른 호주오픈에서 류치치 바로니가 또 한 번의 이변을 일궈낼지 주목된다.

서필웅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