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주로 전화를 통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게 관련 지시를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안 전 수석은 "박 대통령의 지시를 수첩에 적는 동안 박 대통령이 생각나는대로 말하기 보다는 어딘가에 적힌 것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즉 수첩 또는 메모 등에 적힌 내용을 그대로 읽어 내려 갔다는 말이다.
박 대통령은 어떤 경우엔 한시간 이상 '깨알 지시'를 하면서 '받아 적고 있는가'라며 확인까지 했다고 안 전 수석이 전했다.
이러한 박 대통령의 지시가 적힌 안 전 수석의 수첩은 최순실(61)씨의 국정농단 의혹이 담긴 핵심 증거로 박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있다.
28일 검찰, 법조계 관련자 등에 따르면 검찰 특별수사본부 조사 때 안 전 수석은 박 대통령의 지시 사항을 어떻게 업무 수첩에 기록했는지 자세히 설명했다.
안 전 수석의 업무 수첩은 2015년 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작성된 것으로, 모두 17권이며 500쪽을 넘는다.
검찰은 작년 10∼11월 안 전 수석의 주거지와 청와대 압수수색으로 이들 수첩을 확보했다.
안 전 수석은 수첩의 첫 장부터는 수석비서관회의 등 일상적인 회의 내용을 기록했고 마지막 장부터는 박 대통령을 뜻하는 'VIP'라는 제목 아래 박 대통령의 지시 내용만을 담았다.
검찰에서 안 전 수석은 "업무 수첩에 적힌 박 대통령의 지시 대부분이 직접 만나 기록한 게 아니라 박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 내용을 받아적은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수첩에 기록된 것은 모두 박 대통령의 지시이며 내 생각을 덧붙인 것은 전혀 없다"고 했다.
안 전 수석은 "어떤 때는 박 대통령이 전화로 1시간 이상 지시한 적도 있다"며 "통화 도중 '받아적고 있나요'라고 물으며 지시를 충실히 기록하는지 확인하기도 했다"고 밝혀다.
안 전 수석은 "박 대통령이 지시할 것을 미리 수첩 같은 곳에 적어뒀다가 자신에게 불러주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는 최씨 또는 최씨 측근인 차은택씨 등이 박 대통령에 전달한 것을 대통령이 그대로 안 전 수석에서 지시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차은택씨는 지난 23일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 "최씨에게 만들어준 문장을 박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토씨 하나 안 빼놓고' 읽었다"고 증언, 박 대통령 수첩에 적힌 내용 등이 국정에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을 최씨 등이 즉흥적으로 이야기한 것일 수 있어 충격을 더하고 있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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