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의 한국 내 리더십 공백과 트럼프 신행정부 출범이 맞물려 그동안 비상상황 발생 시 한·미 간에 긴밀한 소통이 이뤄질지에 대해 의문이 적지 않았다.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지난 18일 서울 강연에서 “트럼프가 (북한과 관련한 중요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한국의 지도부와 대화를 하려 해도 전화받을 상대방이 없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3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며 북핵 대응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국무총리실 제공 |
황 대행과 트럼프 대통령의 전화통화가 성사되면서 이런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분위기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통화를 한 데 이어 2월10일엔 미·일 정상회담 일정이 확정된 미묘한 시점이라서 황 대행과 트럼프 대통령의 전화통화가 불발됐을 경우 불필요한 억측이 제기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28일 아베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과 통화했다는 점에서 황 대행과의 통화를 트럼프판 중국 포위 외교의 일환으로 보기도 한다.
외교 소식통은 이번 통화에 대해 “황 대행이 대통령이 아닌 대행임에도 미국 측에서는 개인 차원이 아니라 시스템 차원에서 접근한 것”이라며 “권한대행 체제 하에서 한·미 정상 간 소통이 원활할 것인가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출범 초 아시아 순방에 나설 경우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를 이유로 한국 방문을 기피할 가능성도 낮아진 것이다.
내용적 측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위협에 맞선 미국의 대한(對韓) 방위 공약과 한·미 간 대북정책 공조에 대한 의지를 보여줬다는 점이 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방위비 분담금(주한·미군 주둔비용에서 한국이 부담하는 몫)과 한·미자유무역협정(FTA) 개정 등 민감한 현안은 거론하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동맹을 압박하는 문제를 언급하기보다는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총리실도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금일 통화시 방위비 분담이나 FTA 등은 거론되지 않았으며, 전반적으로 한·미동맹 강화와 북핵 문제 공조를 중점으로 협력적인 대화가 이뤄졌다”며 “트럼프 신행정부가 한·미관계를 호의적으로 출발·발전시켜 나가고자 하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전후해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조태용 국가안보실 1차장, 임성남 외교부 1차관, 안총기 외교부 2차관, 조현동 외교부 공공외교대사 등이 잇따라 미국을 방문해 로버트 플린 국가안보보좌관 등 트럼프 진영 외교안보라인 인사들과의 소통을 위해 노력했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부장관의 2월 2∼3일 방한과 2월 중 윤병세 외교부장관의 방미나 독일에서 열리는 다자회의 참석을 계기로 개최 가능성이 있는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양국은 전략적 소통을 한층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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