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사람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자연의 시간에 따라 계절의 옷을 갈아입으며 각기 자기들만의 세상을 살아간다. 절기의 시계로는 소한과 대한을 지나 입춘이 왔지만, 이따금 한파특보까지 내려지는 걸 보니 아직 겨울이다. 겨울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우선 겨울의 어원을 생각해 볼 때, ‘울안(울타리를 친 안)에 있다’는 의미에서 온 말이 아닐까 한다. 겨울에는 날씨가 추우니까 집 안에 있는 시간이 많다. 그래서 ‘있다’는 말의 고어인 ‘겨시다’의 어간 ‘겨시’와, ‘울타리’나 ‘우리’의 생략형인 ‘울’이 합하여 ‘겨시울> 겨슬> 겨울’이 되었다고 본다. 고어에서는 물론이고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도 ‘겨슬’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겨울’은 ‘겨집’과 같은 구조를 지닌 낱말이다. 지금은 ‘여자’나 ‘아내’를 낮잡아 ‘계집’이라 하지만, 이 말은 본래 ‘겨집’으로, ‘겨시다’와 ‘집’의 합성어로 본다.
그리고 ‘우리 둘’이라 할 때의 ‘우리(we)’와 ‘우리 마누라’ ‘우리 마을’이라고 할 때의 ‘우리(my, our)’도 ‘울’에서 왔다고 본다.
몽고점을 가지고 태어나는 우리와 혈맥을 같이하고 있는 몽골인들은 ‘집’을 ‘게르’라고 하는데, 이 말도 ‘겨울’과 발음이 유사하다.
어감으로 보면 ‘겨울’이란 말 속에는 ‘힘겹다’ ‘지겹다’라고 할 때의 ‘겹다’와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정도나 양이 지나쳐 참거나 견디기 어려울 때 ‘겹다’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러니까 겨울은 ‘겨운 철’이기도 하다.
겨울은 ‘청(靑), 적(赤), 황(黃), 백(白), 흑(黑)’의 오색 중에서 흑(黑)에 해당하고, 하루 중에서는 ‘밤’, 방위로는 ‘북(北)’을 가리킨다. 그래서 겨울밤은 더 길고, 깊고, 어둡고, 춥게 느껴진다. 하지만 칠흑 같은 겨울밤에 하얀 눈이 내린다는 것은 경이로움이다.
집에서 기르는 ‘닭(개), 양, 소, 말(닭), 돼지’ 등의 오축(五畜) 중에서는 돼지가, ‘보리, 기장, 피, 벼, 콩’ 등의 오곡(五穀) 중에서는 ‘콩’이 겨울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겨울 먹을거리로는 돼지고기와 콩으로 만든 두부, 비지 등이 좋겠다. ‘자두, 살구, 대추, 복숭아, 밤’ 등의 오과(五果) 중에서는 밤이 겨울에 해당하니 겨울밤 군밤 생각은 지극히 당연하다.
‘인(仁), 예(禮), 신(信), 의(義), 지(智)’ 등의 다섯 가지는 사람이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로 오상(五常)이라 하는데, 이 중에서 지(智)가 겨울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겨울은 침묵과 명상으로 지혜를 기르는 계절이라 할 수 있다.
어렵게 살던 시절의 소박한 꿈은 ‘배부르고 등 따스운’ 것이었다. 그때는 겨울이 왜 그렇게 춥고 길던지, 없는 사람에겐 겨울철이 원수다. 어렵사리 겨울을 보내고 나면 태산 같은 보릿고개가 또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은 먹을거리와 옷가지를 해결하고 나니, 다이어트와 넘치는 쓰레기로 배부른 골머리를 앓고 있으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를 일이다. 수출 터널을 많이 뚫어놓은 덕분인지 이제는 높은 보릿고개를 넘을 일도 없어졌다. 이만한 경제성장을 이끌어 온 노동자와 경제인, 밉든 곱든 정치 지도자에게도 감사할 따름이다.
올겨울이 더 춥게 느껴지는 것은 대통령 탄핵정국에다 일자리와 내수마저도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반(反)이민 행정명령’과 ‘환율전쟁’,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중국의 ‘사드 보복’ 등의 차가운 바깥바람이 끊임없이 몰아치고 있다.
대선 정국은 온통 빙벽이다. 20명 가까이 되던 잠룡 중에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에 이어 박원순 서울시장과 원희룡 제주지사가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더니, 급기야 여권의 유력한 대선주자로 꼽혀온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까지도 결국 현실정치의 높은 빙벽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직 대통령이 탄핵심판을 받는 판국에도, 앞서간 여러 전직 대통령의 씁쓸한 뒷모습을 보고도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이 많은 건 한국 정치의 역설적 비전이다. 적어도 전직 대통령이라면 숨어서 쉴 게 아니라, 일생의 다양하고 역동적인 경륜을 바탕으로 환경 운동이나 사회봉사활동 등을 통하여 국민이 따르고 싶은 대통령상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런 대통령 복(福)은 아직 없는가 보다.
아무리 추워도 희망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셸리는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라고 노래했다. 차갑고 미끄러운 눈길일수록 더 정확히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김구 선생이 좌우명으로 삼았던 서산대사의 시에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는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라고 했다.
권상호 서예가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