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왼쪽)이 지난해 12월1일 박영수 특별검사에게 임명장을 건네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두 사람은 해운대의 어느 카페에 같이 갔다가 색소폰 연주를 듣고 반해 색소폰도 나란히 배웠다. 황 권한대행은 그때 배운 실력을 바탕으로 나중에 검사장으로 승진한 뒤 색소폰 연주 CD까지 냈다.
둘의 친분은 2015년 6월 황 권한대행이 법무장관에서 국무총리로 전격 발탁된 뒤 절정에 달했다. 국회 인사청문회에 황 권한대행의 지인 자격으로 출석한 박 특검은 “조직 내에 있을 때에도 상하 간에 신망이 아주 두터운 분이었다”면서 “여러 부처 장관들이나 국회와 두루 협조하면서 부드럽게 총리직을 수행할 수 있는 적합한 인물”이라고 황 권한대행을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결국 황 권한대행은 청문회 문턱을 무사히 넘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총리 자리에 올랐다.
그런데 국회 청문회가 열린지 꼭 6일 만에 박 특검이 괴한의 습격을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평소 검찰 고위간부 출신 변호사들이 누리는 전관예우 관행에 불만을 품고 있던 건설업자 이모(66)씨가 TV로 전국에 생중계된 황 권한대행 청문회를 시청하던 중 박 특검의 이름과 얼굴을 알아본 것이다. 이씨는 검찰에서 서울고검장까지 지낸 박 특검이 틀림없이 전관예우을 받았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다.
이씨는 2015년 6월16일 오후 박 특검이 대표변호사로 재직하던 서울 서초구의 한 법무법인으로 찾아가 퇴근하는 박 특검을 붙들고 항의하던 중 흉기를 휘둘러 왼쪽 얼굴과 목 부위를 찔렀다. 박 특검은 곧장 인근 대형병원으로 옮겨져 두 차례 봉합수술을 받았다. 상처 부위는 15㎝가량이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자신의 청문회에 출석했다가 흉기 테러까지 당했으니 황 권한대행 입장에선 박 특검에게 무척 미안했을 것이다.
지난해 12월1일 황 권한대행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할 특별검사로 임명된 박 특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두 사람은 오랜만에 조우했다. 원래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장을 주는 게 맞으나 특검의 수사 대상인 박 대통령이 특검에게 임명장을 건네는 모습이 바람직하지 않아 대통령 대신 총리가 임명장 전달을 맡은 것이다. 절친한 검찰 선후배였던 둘이 이번에는 대통령 바로 아래 2인자로서 대통령을 보호해야 할 ‘방패’와 그 대통령의 비리 의혹을 철저히 파헤쳐야 할 ‘창’으로 어색한 재회를 한 셈이다.
지난 3일 청와대 압수수색에 나선 박영수 특별검사팀을 태운 차량이 청와대의 ‘불가’ 입장을 확인한 뒤 철수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특검 수사기한은 오는 28일 1차로 만료한다. 특검법에 따르면 대통령의 허가를 얻어 수사기간을 30일 연장할 수 있긴 하다. 문제는 국회 탄핵소추로 박 대통령 직무가 정지된 상황에서 특검이 수사기간 연장을 요청하는 경우 이 또한 황 권한대행이 가부를 판단하게 된다는 점이다.
박영수 특별검사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특검의 압수수색 협조 요청을 사실상 거부한 4일 굳은 표정으로 출근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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