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일하는 사이인데 신분을 모르고 일한다는 것이 편치 않았다.”(정현식 전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
“신뢰할 수 없어 몰래 녹음을 하게 됐다. 미르재단 등 사업이 계획없이 진행된다고 느꼈다.”(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
“그가 추천한 인사가 장관에 임명되고 추진한 예산이 그대로 반영되는 것을 보고 겁이 났다.”(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
“평생 정치만 한 사람으로 화내면 진짜 무섭다.”(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
최순실씨는 부하직원에게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느냐”고 모멸감을 주기 일쑤였다고 한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최씨가 실소유한 회사 더블루K의 대표로 일했던 조성민씨는 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최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명색이 더블루K 대표였지만 오탈자나 체크하는 게 내 역할이었다”며 “내 결재는 별도로 없었고, 내용이 맞으면 최씨에게 넘겼다. 최씨가 내용을 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 뜯어 고쳤다”고 증언했다. 더블루K는 자신과 무관한 회사라는 최씨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조 전 대표는 최씨의 업무 스타일에 대해 “최씨는 A를 지시했을 때 ABC까지 생각하면 ‘A까지만 하지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느냐’며 모멸감을 주는 스타일”이라며 “내가 더블루K에서 2개월 만에 나오게 된 것도 최씨의 그런 언사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신분을 숨기느라 급급했다. 뭔가 남에게 들켜선 안되는 나쁜 짓을 하는 이들이 보이는 전형적 행태다. 정현식 전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은 이날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11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2015년 12월 최씨를 처음 만나 면접을 본 뒤 K스포츠재단에 들어가게 됐지만 2016년 5월까지 그의 이름을 몰랐다”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저 여자가 누구냐,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면 그냥 ‘회장님’으로 부르면 된다”는 답만 돌아왔다는 것이다.
정 전 사무총장은 “그래도 같이 일하는 사이인데 신분을 모르고 일한다는 것이 편치 않아 궁금해 하던 차에 누가 기마 자세로 말 타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는 것을 보고 그게 힌트라고 판단해 아들과 함께 ‘말’과 관련한 모든 검색어를 다 집어 넣었다”며 “그러다가 인터넷에서 정윤회 전 비서실장 옆에 최순실씨가 있는 사진을 발견하고 그의 정체를 눈치챘다”고 덧붙였다. 그는 최씨가 그토록 자기 신분을 숨진 이유에 대해 “나중에야 짐작하게 됐다”고 뼈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전날 열린 최씨 공판에선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이 최씨와의 대화 내용을 휴대전화로 몰래 녹음한 것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 전 사무총장은 “함께 일하는 (최씨 등을) 도무지 신뢰할 수가 없어 녹음하게 됐다”며 “(미르재단 관련) 사업이 계획없이 진행된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공개된 녹음파일 속에서 최씨는 “난 제일 싫어하는 게 신의를 저버리는 걸 제일 싫어해”라고 말했다. ‘신뢰를 가장 중시하고 배신을 미워한다’는 박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고영태씨는 더블루K 이사로 일하는 동안 최순실씨의 개인 심부름만 주로 했다고 증언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고 전 이사는 전날 공판에서 최씨가 실질적으로 운영한 더블루K에 관여하는 동안 최씨의 집안 일이나 심부름, 고장난 차 수리 등 개인적 업무까지 봐줬다고 증언했다. 그는 “자동차 사고가 나면 고쳐 온다든지 그런 일들과 집안에 무슨 일이 있다고 하면, 뭐 좀 갖다줘야 한다고 하면 회사에서 전달해 주고 심부름도 할 겸…”이라며 “모든 직원이 다 똑같이 움직였다”고 말했다. 더블루K라는 회사 직원들이 최씨 개인에게 고용된 ‘심부름꾼’처럼 움직였다는 얘기다.
최씨와 결별한 이유를 묻자 고 전 이사는 “최씨가 추천한 인사가 장관에 임명되고 추진한 예산이 그대로 반영되는 것을 보고 겁이 났다”는 말로 최씨가 박근혜정부의 ‘1인자’라는 세간의 추론을 확인했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이 헌재 탄핵심판 변론에서 고 전 이사와 최씨의 불륜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 고 전 이사는 “답변할 가치가 없다. 신경쓰지도 않는다”며 “신성한 헌재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역겹다. 과연 그게 국가원수인 대통령의 대리인단이 할 말인지 한심할 따름”이라고 혀를 찼다.
차은택씨는 최순실씨에 대해 “평생 정치만 한, 정말 무서운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회장님(최씨)이 무서우면 진짜 무서운…. 이 바닥에서 정치만 평생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저 사람(최씨)이 한 번 화날 때는… 제가 예전에 그 사람 아래 있었던 사람을 봤는데….”
김태훈·장혜진·김민순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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