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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왜 성조기를 드나요?”…'촛불·태극기'를 바라보는 외국인들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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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2-18 18:38:50 수정 : 2017-02-20 15:5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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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여m.’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가 열리는 서울 광화문광장과 탄핵에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가 열리는 덕수궁 대한문 앞 직선거리다. 불과 500여m를 사이에 두고 매주 탄핵 찬반 집회가 이어지는 ‘한국적인 현상’을 외국인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날 광화문광장과 대한문 일대에서 만난 외국인들은 “집회가 평화적으로 진행되는 게 대단하다”면서도 “왜 태극기 집회에서 태극기와 미국 성조기를 함께 드냐”고 반문했다.

18일 경찰 버스로 만들어진 차벽을 사이에 두고 서울 광화문광장과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각각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와 탄핵 반대 집회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여행 20일째라는 칠레인 셀레스테 바르가스(30·여)는 “보통 반대 입장인 집회나 시위는 양측이 서로 다른 곳에서 여는데, 그간 큰 충돌 없이 이어져 왔다니 이상하다(weird)”고 말했다. 바르가스는 이어 “칠레에서는 경찰들이 물대포를 쏘면서 시위대를 막는다”며 “칠레에 비하면 집회가 대단히 평화적”이라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18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인근에서 만난 칠레인 셀레스테 바르가스. 이창훈 기자
광화문광장에서 만난 말레이시아인 파리드(22)도 “(촛불 집회에)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폭력이 전혀 없고 모두 안전한 게 좋은 일(good thing)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구의 한 대학에서 공부 중인 영국인 리처드 비트코브스키(20)도 “영국이었다면 양측(촛불·태극기 집회) 간 충돌이 일어났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한 가지 문제는 촛불 집회가 3개월 넘게 이어지는데도 대통령이 사임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며 “영국에서는 국민투표 결과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EU) 이탈)가 결정된 뒤 총리가 바로 사임했다”고 설명했다.

“촛불 집회가 3개월 넘게 이어지는데 대통령이 사임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은 영국인 리처드 비트코브스키. 권지현 기자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는 지난해 6월24일(현지시간) 브렉시트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 결과가 나온 직후 “영국은 새로운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며 그해 10월 전격 사임을 발표했다.

무엇보다 외국인들은 태극기 집회에서 미국 국기인 성조기가 등장하는 점을 의아해했다. 바르가스는 “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 성조기를 드냐. 내정 문제에 미국의 도움을 요청하는 거냐”고 되물었다. 이어 “(칠레에)친미 성향의 정부가 집권한 때가 있었지만 미국은 미국이고 우리는 우리”라며 “칠레라면 (대통령 탄핵 관련 집회에서)결코 성조기를 들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네덜란드인 욥(맨 왼쪽)에게 태극기와 미국 성조기를 든 한 남성이 태극기 집회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는 모습. 이창훈 기자
바르가스처럼 여행 중인 네덜란드인 욥(20)은 “한국을 떠나기 전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를 모두 보고 싶어서 나왔다”고 했다. 욥은 “뉴스로 본 촛불 집회와 오늘 직접 본 태극기 집회가 평화적인 게 인상적”이라면서도 “(태극기)집회에서 국기와 성조기를 드는 건 이해가 안 된다”고 고개를 저었다. 네덜란드의 경우 일년에 한 번 국경일(매년 4월30일)에만 국기를 꺼내고, 애국심을 강조하며 국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은 이민에 반대하는 민족주의자로 통한다는 설명이다.

욥은 “태극기를 든 한국의 민족주의자들은 애국심이 강할텐데 왜 성조기를 드는 거냐. (한국이)미국의 51번째 주가 되고 싶은 거냐”고 질문을 쏟아내며 “미친 거 같다(It's crazy)”고 혀를 내둘렀다.

1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본지 기자가 욥과 얘기를 나누던 중 30대 남녀가 끼어들어 태극기 집회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촛불 집회를 비난하기도 했다. 이들은 “촛불 집회에는 탈북한 위장 간첩과 중국 정부의 지령을 받은 중국인들, 극좌 세력이 개입해 반정부 운동을 하고 있다”며 “촛불 집회 참가자들은 위선적”이라고 주장했다. 욥은 이들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고 “두 집회를 다 보고 최대한 중립적인 위치에서 판단하려 한다”며 자리를 떴다.

미국인 조나단 나브(29)는 “미국은 어떤 사태가 터지면 대개 시민들이 늦게 반응하는데 한국인들은 곧바로 행동에 나선 게 대단하다”고 치켜세웠다. 전날 한국에 도착했다는 미국인 존 스미스(68)는 “시민들의 시위 참여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라면서 “입장이 어떻든 간에 지도자가 국민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진영·권지현·이창훈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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