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한다는 말을 들은 어떤 사람이 물었다. “공(公)께서도 사사로운 마음(私心)이 있습니까?” 제오륜이 대답했다. “전에 나에게 천리마(千里馬)를 준다는 사람이 있었는데, 내가 비록 받지는 않았지만 국가의 주요 인재를 선발하고 천거하는 정승 회의 때 마음에 잊을 수가 없었어요. 물론 끝내 등용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는 또 조카가 아프다고 하니 하룻밤에 열 번을 가서 문병을 했지만 자신의 아들이 병 들었을 때에는 문병을 가지 않았는데 대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자신에게도 사사로움이 어찌 없겠느냐고 털어놓았다.(‘후한서 제오륜열전’)
이동식 언론인·역사비평가 |
겸종과 주공의 관계는 매우 끈끈해서 단순히 주종 관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서로가 부자지간 같은 관계로 인식하기도 했다. 실례로 조태채(趙泰采·1660∼경종 2년 1722)의 겸종이었던 홍동석(洪東錫)이 선혜청 서리를 맡고 있을 때, 간관(諫官)이 자신의 주공인 조태채를 탄핵하는 장계(狀啓)를 옮겨 적도록 했는데, 홍동석은 붓을 던지면서 주공과 겸종의 관계는 부자와 같은 의리가 있고, 이에 자식이 아버지의 죄를 적을 수 없다고 했다. 심지어는 사약을 받는 자리에까지 쫓아가서 그 아들이 오도록 기다려야 한다며 금부도사가 주는 사약을 발로 차서 사형집행을 한 달 이상이나 늦추기까지 했다.(‘이향견문록’) 이처럼 끈끈한 관계가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양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문제는 이러한 겸종이 온갖 부정부패의 원인이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의 율기(律己) 6조 중 제3조 제가(齊家)편에서 벼슬에 나갈 때에는 겸종이 설혹 노고가 있더라도 선물을 보내주겠다는 등의 방법으로라도 만류를 해서 따라가지 않도록 해야 하며, 친척이 따라가는 것도 말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제오륜이 겸종을 하나도 데리고 가지 않아 부인이 직접 부엌일을 한 것과 명나라 때 왕서(王恕)라는 사람이 운남순무(雲南巡撫)로 나가면서 “하인을 데리고 가고 싶었으나 백성들의 원망을 살까 두려워 늙은 몸을 돌보지 않고 단신으로 왔다”면서 하인을 데리고 가지 않은 것을 모범 사례로 들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주요한 행정관서의 장들이 자신들 주위의 사람을 불러서 직접 자리를 주고 쓰는 경우가 많다. 이들 중에는 학문이나 정책 연구, 현장 경험 등이 뛰어나 정무직으로 채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개중에는 개인적인 일상이나 몸관리를 담당하다가 갑자기 높은 자리를 받기도 한다. 그런 경우에는 공직자로서 국민이 낸 세금을 받는다는 정신자세나 태도, 공직자로서의 윤리와 덕목을 넘어서서 주공과 겸종처럼 주종관계, 나아가서는 홍동석의 경우에서 보듯 부자관계처럼 끈끈해지고, 그 관계를 악용해서 이권을 챙기거나, 주공의 잘잘못에 대해서는 일절 눈을 감고 은폐하는 행위까지 우려되고 있고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
요즘은 공직자의 문호를 개방하는 추세이다. 그만큼 공직자를 선발하는 것은 공개채용이 원칙이 돼야 한다. 행정이나 정부 부처의 필요 인원을 쓰더라도 발탁이라는 이름 아래 기관장의 재량이나 선택권으로만 넘기지 않고 최소한의 기준으로 공개하고 검증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도 우리 사회를 흔들고 있는 사태에서 경험한 값비싼 교훈이라 하겠다.
이동식 언론인·역사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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