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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해 이토록 ‘의미 없이, 성실히’ 살고있는가 …

입력 : 2017-02-22 02:04:00 수정 : 2017-02-21 21:3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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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 이완 개인전
언젠가 닭고기로 만든 이완(38) 작가의 야구공 작품을 본 적이 있다. 생산물의 유통구조를 역설적으로 보여준 작품이었다. 슈퍼마켓에서 파는 과자 봉지에 적혀 있는 성분표시를 보게 되면 미국산, 호주산 등등 거대한 국가적 생산구조가 읽혀진다.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한 것들이라 생각했지만 그 배후에는 우리도 모르게 제시된 구조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겉에서 보는 것과 달리 내부구조의 본질은 전혀 다르다. 마치 닭고기로 만든 야구공처럼 말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거대한 시스템이나 구조 속에 살아가고 있다. 코디 최와 함께 올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이기도 한 이완 작가가 주목하고 있는 지점이다. 서울 성북동 313아트프로젝트에서 3월10일까지 열리는 이완 개인전은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의 일면을 미리 엿볼 수 있는 자리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회화작품의 이력도 재미있다. 작가는 캔버스 바탕칠 작업에 노동자를 동원했다. 직업소개소에서 소개받은 노동자들의 국적도 다양하다. 몽골, 우즈베키스탄, 캄보디아 등 최근의 외국인 노동자 실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물론 한국인 노동자도 있다.

노동자들에게 일부러 가장 작은 1호짜리 붓으로 100호짜리 평면 캔버스 전체를 색으로 채우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시간당 8000원의 대가를 지불했다. 그렇게 칠해진 배경 위에 작가는 아무 의미도 없는 선, 즉 펜이 잘 나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무렇게나 휘갈긴 볼펜 흔적을 확대하여 그대로 옮긴 선을 붓질로 옮겨서 작업을 완성했다. 화면에 남은 이미지는 노동자와 작가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노동자들은 시간당 급여만 받으면 그뿐이고, 작가 역시 의미 없는 낙서만 남겼을 뿐이다. 휘갈기듯 아무 의미 없는 그림, 작가는 ‘무의미한 것에 대한 성실한 태도’로 제목을 달았다.


노동자들이 밑칠한 캔버스 위에 자신의 낙서 같은 선으로 작품을 마무리한 이완 작가. 선으로 이루어진 왼쪽 작은 그림은 이완 작가의 작품인 ‘무의미한 것에 대한 성실한 태도’의 일부.
“우리는 무의미한 것에 매몰되어 살아간다. 그 속에서도 결국 의미를 찾아내는 주체는 인간이다. 내가 무의한 것을 작품으로 변환시키는 것은 그것의 형상화라 할 수 있다.”

그의 이번 회화작품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무의미한 것에 성실한 태도를 가지게 되면 미래에는 사회시스템이 제시하는 노동과 소비 구조에 모두가 길들여진 몰개성한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당찬 경고이기도 하다.

영상작업인 ‘메이드인’시리즈는 한 끼의 아침식사를 스스로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작가가 아시아 12개국을 방문해 식사에 필요한 쌀, 젓가락, 설탕 등의 재료를 제작하는 과정을 담았다. 중국과 대만편이 선보인다. 중국편에서는 천년 된 수도원의 마룻바닥 나무를 깎아 나무젓가락을 만들어, 천년의 역사가 단 한 번의 식사로 소모될 나무젓가락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대만편에서는 작가가 사탕수수 농장에 한 달간 머무르며 설탕을 생산하는 모든 공정을 촬영했다. 


“권력과 자본이 작동시키는 시스템은 현대인에게 불가항력적으로 작용하고, 우리 개개인은 자신의 본질과 특성, 정체성을 잃어버린다. 거대 시스템의 통제와 조종 아래 본질까지 잃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기 힘들다.”

그는 특히 신자유주의체제는 개인 삶의 다양성, 세계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획일화시킨다고 했다. 대만에서 설탕, 태국에서 실크, 미얀마에서 금 등 아시아 각국에서 특정 산물을 직접 만들어내는 과정을 영상으로 담은 이유는 평범한 사물 하나도 견고한 신자유주의체제의 산물임을 드러내고, 아시아의 세계화 속 후기식민주의적 상황도 짚어내기 위해서다.

이완 작가는 이런 문제의식을 조각이나 영상 등 다양한 장르 작품으로 시각화하고 있다. 관람객들에게 인문학적 인식을 요구하는 작가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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