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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안으로 들어온 GPS… 상상과 현실의 경계 허물다

입력 : 2017-02-25 12:00:00 수정 : 2017-02-25 10: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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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156〉 위치기반서비스(LBS) # 이상하고 신비로운 주머니 속 몬스터의 세계

어느 부모나 그렇겠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원하건 원치 않건 여러 가지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래서 평소에 유치하다고 혹은 재미없다고 경멸하던 것이나 가치를 두지 않아서 절대로 하지 않을 것 같았던 일을 어쩔 수 없이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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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때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많이 보지 않는 편이어서 그것에 푹 빠져서 사는 친구들을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아이가 커가면서 그 이상한 세계에 뒤늦게 합류하게 됐다. 우리 집 맏이는 여자 아이인데 공주 인형이나 예쁜 옷에는 관심이 없었고 특이하게도 공룡을 좋아했다. 그런데 공룡은 무척 많은 종류가 있고 복잡한 계보가 있으며 다양한 시간대가 있는 상상 속에 존재하는 동물, 다시 말해 공부를 해야 하는 아주 복잡한 존재들이었다.

처음 단계는 공룡 모형을 사주고 공룡도감을 사주는 일이었다. 아이는 브라키오사우루스의 긴 목을 한 손에 거머쥐고 외출을 하곤 했고, 이상한 공룡소리를 흉내 내며 여러 마리의 공룡모형을 방에 늘어놓고 하루 종일 상상의 세계에 빠져 살았다.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공룡 관련 비디오를 구해서 보게 됐고, 급기야 나에게 매일 공룡을 그려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나는 스케치북을 사서 매일 납기에 시달리는 하청업자처럼 공룡을 그려줘야 했고, 그러다 보니 어느덧 공룡 이름을 거의 다 외우게 되었다. 그렇게 공룡에 적응이 되고 나 역시 취미가 붙어갈 즈음에, 어느 날부턴가는 아이의 관심이 포켓몬이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옮겨갔다. 원래 어린이용 롤플레잉 게임(Role Playing·게임 속의 주인공이 되어 가상의 세계에서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면서 퍼즐을 풀어가는 방식의 게임)에서 출발한 그 애니메이션은 그 시절 전 세계에서 화제가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수입하여 방송국에서 방영해주던 무렵이었다.

우선 TV 앞에서 하루 종일 보고 또 보는 것으로 시작됐다. 태초마을에 사는 지우라는 소년이 오박사로부터 피카츄와 몬스터볼, 포켓몬도감을 받아 포켓몬 마스터가 되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숲 속에서 새로운 포켓몬을 만나면 몬스터볼이라는 이름의 공을 던져 잡기도 하고, 체육관에 들르거나 경쟁자를 만나면 볼 안에 들어 있던 여러 가지 몬스터들이 나타나서 대결을 벌인다. 

포켓몬을 잡고 대결시키고 로켓단이라는 어설픈 두 악당이 한 번씩 나타나지만 별로 해를 끼치지 않고 물러난다는 반복적인 내용이 아주 단순하고 약간은 조잡해서 처음에는 어린아이나 보는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같이 앉아서 보다 보니 그런 조잡함과 단순함에 나 역시 빠져들었다. 아이는 포켓몬과 관계되는 여러 가지 놀잇감을 사달라고 했고, 역시나 마지막 단계로 포켓몬을 그려달라고 했다. 그림을 그리다 역시 포켓몬 151마리의 이름을 다 외우게 됐다.

돌이켜 생각하면 취미가 옮겨다니고 관심이 바뀌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계속 대상은 바뀌지만 그것은 어떤 이에게 머릿속에 있는 이상적인 그림을 찾아다니는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권선징악 계열의 동화 같은 공주나 왕자의 이야기보다 계보가 복잡하고 역동적인 스토리에 빠지는 아이의 성향은 지금도 그대로다.

# 현실세계에서 포켓몬을 만나다

그러다 몇 년이 지나며 아이는 자랐고 유행도 엷어지면서 포켓몬도 어느덧 흘러간 옛 노래가 됐다. 간혹 책장을 정리하다가 예전에 사 모았던 포켓몬 관련 서적이 눈에 띄면 그때마다 나달나달해진 책을 다시 꽂아놓지 않고 재활용 쓰레기 더미 위에 올려놓았다.

지난해 증강현실을 이용한 포켓몬고(Pokemon GO)라는 게임이 세상에 나온다는 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화제를 불러일으킨 그 소식에 나는 지난 시절 잠 못 자며 아이들과 같이 보았던 포켓몬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얼마 전 회사 직원들과 현장 감리를 겸한 사무실 엠티를 제주도로 갔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서 한라산 정상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선명하게 보이던 날, 하루 종일 바다를 보면서 차를 마시고 놀다가 저녁에 숙소에 모여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하던 중 화제가 요즘 유행하는 포켓몬고 게임으로 옮아갔다.

직원들이 전체적으로 연령이 젊은 편이어서 대부분 그 게임을 열심히 하고 있다며, 내게도 한 번 해보라고 부추겼다. 게임을 하면서 시선을 휴대전화에 고정한 채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영혼을 잃은 좀비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기에 처음엔 거부했다가, 한번 해보고 칼럼 주제로 써보라는 권유에 못 이기는 척 넘어갔다. 

앱 스토어에 들어가 앱을 깔고 그 자리에서 시작했다. 화면에 너무나도 익숙한, 예전에 밤새 보았고 수없이 그렸던 포켓몬이 튀어나왔고, 그 아래에 역시 너무나도 익숙한 몬스터볼이 나왔다. 손가락으로 밀어 올리니 볼이 날아가서 포켓몬을 잡았다. 그러면 점수가 올라가고 또 다른 포켓몬이 나오고 레벨이 올라갔고, 저녁 내내 수많은 포켓몬을 잡았다. 피카츄, 파이리, 꼬부기, 파오리 같은 친숙하고 반가운 포켓몬들이 내가 앉은 방 안에서, 길옆에서 튀어나왔다. 어릴 적 포켓몬과 함께 자랐던 지금의 이십대들이 이 게임에 열광하는 이유를 한순간에 알게 됐다.

서울로 돌아와 확인해 보니 우리 집 근처는 포켓몬을 잡을 수 있는 몬스터볼 같은 아이템을 공짜로 나눠주는 포켓스톱도 없고 포켓몬도 통 나타나지 않는 불모지였다. 오히려 사무실 근처에는 골목마다 포켓스톱이 있었다. 알고 보니 포켓몬이 많이 나오는 이른바 ‘핫플레이스’는 홍대앞이나 건대 같은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유흥가나, 선유도공원이나 보라매공원처럼 사람들이 사고 걱정 없이 걸으며 돌아다닐 수 있는 공원이 대다수였다. 심지어 경복궁 같은 곳도 포켓몬고 게임 때문에 입장객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지난 주말 답사를 위해 잠시 들렀던 여주휴게소에서는 보기도 힘들다는 ‘리자드’가 불쑥 나와서 용케 잡았는데, 거기 들른 사람들만큼 포켓몬들도 북적이고 있었다.

생전 게임이라곤 거의 해본 적 없는 내가 이것저것 게임의 팁을 딸아이에 배워가며 휴대전화를 앞세워 포켓스톱을 찾아가고 사탕을 모아 포켓몬들을 진화시키다 보니, 어이없게도 일주일 사이 속성으로 20레벨에 100마리 정도의 포켓몬을 도감에 채우는 성과(?)를 이뤘다.

그러다 보니 이게 오래 할 일 같지는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아예 잡을 수 없는 포켓몬이 있어서 아무리 해도 도감을 다 채울 수는 없다고 한다. 출시 당시에는 우리나라에서만 1000만 명 가까이 앱을 다운받아 5명 중 1명꼴로 이 게임을 접속했다는데, 최근 급속도로 이용자가 줄고 있는 건 역설적으로 패턴화된 게임방식에 금세 싫증이 나기 때문일 것이다.

#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면서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된다

포켓스톱이 아파트 단지 같은 주거지역에 없는 건 집에서는 게임을 하지 말고 쉬라는 배려가 아닌가 싶고, 강변북로 같은 고속화 도로 주변에도 없는 건 행여 운전자가 섣불리 게임을 하다 사고를 내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친숙했던 151마리의 포켓몬에서 마지막 151번 ‘뮤’는 아예 잡을 수 없게 되어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보지 않게 된 이후에도 계속 새로운 포켓몬이 나와서 지금은 7세대 800여 종이나 된다고 한다. 게임사는 유저들이 흥미를 잃지 않도록 잡을 수 있는 포켓몬 수를 늘리는 업데이트를 계속하면서, 스타벅스, 세븐일레븐 등의 매장을 포켓스톱이나 체육관으로 만드는 파트너십도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

포켓스톱은 표지판이나 그림이나 조각 같은 상징물이 있어 눈에 잘 띄는 장소에 많이 설치되어 있다. 그것을 보면 그동안 도시나 건축 분야에서 열심히 연구했던 ‘장소마케팅’이 참 덧없는 일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사람 없는 한적한 폐사지에 포켓몬만 풀어놓으면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갈 테니 정작 이 게임회사와 파트너십을 해야 하는 건 문화재청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포켓몬고 게임은 현실에 존재하는 배경을 두고 상상을 덧붙이는 ‘증강현실’의 대표적인 사례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을 간혹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가상현실은 그 배경도 상상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증강현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GPS(Global Positioning System)이다. GPS 위성에서 보내는 신호를 수신해 사용자의 현재 위치를 계산하는 위성항법시스템으로, 처음엔 항공기, 선박, 자동차 등의 내비게이션 장치에 주로 쓰이다가 이제는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 개인의 손 안으로 들어왔다.

원래 GPS는 “미국 국방부에서 폭격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군사용으로 개발한 시스템”이라고 한다. GPS가 개발되기 전에는 특정 목표물을 파괴하기 위해 수천 개의 폭탄을 일정 범위에 쏟아붓는 이른바 ‘융단 폭격’을 사용했는데, 정확하지도 않고 효율성도 크게 떨어지는 방식이었다. 이에 외부 조건에 영향을 받지 않는 폭탄의 필요성이 대두하였고, GPS를 이용한 유도 폭탄의 위력은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증명되었다. 2000년에 미국이 민간에 공개하면서 현재 GPS는 전 세계에 무료로 개방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포켓몬고 앱을 실행하면 “주변을 잘 살펴서 주의해서 항상 주의하면서 플레이해 주십시오. 위험이 예상되는 지역에는 들어가지 마십시오. 허가없이 들어갈 수 없는 장소나 건물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마십시오” 등의 메시지가 뜬다. 이동속도가 빠르면 운전할 때는 하지 말라고 한다. 

해돋이 명소인 울산 간절곶 해안의 명물인 대형 우체통 주변이 포켓몬GO의 포켓볼을 얻을 수 있는 ‘포켓스톱’으로 알려지면서 포켓몬GO 이용자 등으로 붐비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근본적으로 이 게임은 사용자가 움직이지 않으면 무의미한 게임이다. 기존의 컴퓨터 게임들이 내 방이나 초고속 랜선이 깔린 PC방에 앉아 멀리 있는 가상의 누군가와 싸우거나 협력하면서 점수를 쌓아가는 방식이었다면, 포켓몬고는 핫플레이스를 찾아다니며 이동 거리에 따라 점수를 더 올릴 수 있어서 신발을 꺼내 신고 집 밖으로 나가야만 한다.

이렇게 GPS 같은 장치를 통해 나의 위치를 알리고 각종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을 위치기반서비스(LBS: location based service)라고 부른다. 가령 단순하게는 포털 사이트에서 알려주는 오늘의 날씨라든가 재난 경보, 혹은 내 근처에 있는 좋은 식당이나 호텔을 검색해 준다거나, 목적지를 검색해 가장 빠른 경로를 찾고, 가족이나 지인의 위치를 파악해 안전을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 등이 여기서 출발한다.

물론 거기에는 나의 사생활을 어느 정도 공개해야 한다는 위험이 따른다. 그래서 여러 나라에서 위치기반 서비스를 확대하면서도 오남용을 막기 위한 법을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5년 7월 28일부터 ‘위치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내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면서 새로운 세계가 나타나고, 그 세계는 우리가 경험했던 익숙한 세계와는 다른 현실과 상상 사이에 존재한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공동대표·‘내가 살고 싶은 작은 집’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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