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기적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성취하는 동안 우리 국민은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위해 희생해 왔습니다. 피청구인(대통령)에게 기대를 걸고 신뢰를 보냈던 국민들이 받은 상처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정도입니다.”
27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선 국회 측 권성동 탄핵소추위원장의 목소리는 떨렸다. 총 17차례의 변론을 거쳐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을 마무리 짓는 재판의 엄중함을 온몸으로 느끼는 듯했다.
권 위원장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인 대통령이 헌법을 준수하고 대통령의 직책을 성실하게 수행해야 하는 의무를 저버려 이 탄핵심판 사건까지 오게 됐다”고 탄핵의 정당성과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미리 준비해 온 최종변론서를 막힘없이 읽어내려가던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을 설명하던 중 감정이 북받쳤는지 한숨을 쉬거나 잠시 말을 멈추기도 했다.
수북이 쌓인 준비서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 변론이 열린 2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국회 측 대리인이 최종의견서와 구두변론요지서 등 준비서면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이후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대통령 대리인단의 최종 의견 발언 순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대통령 대리인들끼리 말이 맞지 않아 우왕좌왕하기도 했다. 이 권한대행이 “이동흡, 전병관, 이중환 변호사 외에 또 발언하실 분이 계시느냐”고 묻자 피청구인 대리인석에 앉은 김평우 변호사를 비롯한 5∼6명의 변호사가 우르르 손을 들었다. 이 중 ‘이의가 있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김 변호사는 재판부를 향해 “(미리 정해진) 저 세 변호사들이 먼저 하는 게 아니고 정기승 변호사님께서 먼저 하고 제가 뒤이어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에 이 변호사가 “미리 합의된 바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대통령 대리인단은 “대통령은 사익을 추구한 적도 없고 깨끗한 정치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정치인”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차례로 탄핵 기각을 주장했다. 전날 헌재에 불출석 의사를 알린 박 대통령은 자신의 입장을 담은 최후진술서를 헌재 재판관 출신인 이동흡 변호사에게 대신 읽게 했다. 박 대통령은 최후진술서를 통해 최순실과의 관계를 언급하며 국민에게 송구하다면서도 법적으로 문제가 될 일은 전혀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최순실씨는 40년간 옷가지 및 생필품 등을 도와준 사람으로 ‘국정농단’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고 최씨의 사익 추구에 어긋나는 공무원을 면직한 사실도 없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다만 “그동안 가까이 했던 최씨에 대한 믿음을 경계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점을 후회한다”는 심경을 밝혔다.
김민순 기자 s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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