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자’에 오른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범보수진영의 엇갈린 제안에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되면서 황 권한대행은 명실상부한 과도정부의 수반이 됐다. 오는 5월 예상되는 차기 대선까지 대통령으로써의 권한을 갖게 된 것이다.
11일 보수진영 관계자들에 따르면, 일부 보수인사들이 황 대행에게 권한대행을 조만간 사직하며 정치권에 거국내각 구성을 제안하는 방안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보수 진영에서 홍준표 경남지사에게 기대를 걸었으나 홍 지사의 지지율이 예상보다 오르지 못하고 있다”면서 “반면 황 대형이 유일하게 10%안팎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독보적인 보수 대선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어 이번 대선에 출마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선 관리는 정치권이 합의해 구성하는 거국내각이 맡으면 된다”고 말했다. 황 대행이 아무리 중립적으로 대선을 관리한다고 노력해도 야권에선 박근혜 정부에서 오랫동안 국무총리로 역할해 온 황 대행에게 트집을 잡아 불공정 시비를 걸 게 뻔한 만큼 황 대행이 굳이 대선을 관리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게 보수진영의 판단이다.
정치권이 거국내각 구성을 두고 파열음을 낼 경우 거대 야당이 그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손해볼 게 없다는 점도 보수진영의 노림수다. 박 전 대통령이 지난해 국회를 찾아 여야가 합의해 국무총리를 추천해 주면 임명하겠다고 제안한 ‘떠넘기기 작전’인 셈이다. 특히 야권이 거국내각 구성을 놓고 대립할 경우 야권을 교란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세론을 흔들 수 있는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보수진영에선 황 대행을 박 전 대통령의 공백을 메울 ‘보수 아이콘’으로 평가하고 있다. 보수진영 관계자는 “통합진보당 해산 등 보수적 행보를 통해 보수진영의 깊은 신뢰를 얻었다”면서 ”TK(대구•경북)지역을 정치적 기반으로 하는 자유한국당의 정체성과 일치한다”고 말했다. 황 대행이 보수적자 경쟁을 벌이고 있는 바른정당 대선주자의 지지율을 월등하게 앞서고 있어 대선정국에서 범보수 진영의 주도권도 쥘 수 있다는 게 한국당의 계산이다.
보수진영은 강경 보수주의자인 황 대행의 표 확장성 한계에 대해서도 별 문제가 안된다는 입장이다. 한국당 관계자는 “대선에선 정책이나 인물 영입을 통해 대선주자의 확장성을 보완할 수 있다”며 “박 전 대통령이 김종인 전 장관을 영입하고 경제민주화 공약을 내걸어 중도층 표십을 흡수하며 자신의 보수 성향을 보완한 전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반해 다른 보수인사들은 황 대행이 대선을 관리한 후 내년 서울시장에 출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수진영의 한 관계자는 “황 대행이 박 전 대통령 국정농단의 공범으로 부각되는 상황에서 황 대행이 대선에 출마하는 것은 민심을 역행하는 것이고 대선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황 대행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대선관리에 매진하는 것이 향후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한국당 한 의원은 “황 대행이 현재의 지지율에 현혹되지 않고 권한대행으로서의 직무에 충실하겠다고 선언하고 대선을 엄정하게 관리해낸다면 강경 보수의 이미지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며 “차기 정부 출범 후 인사나 정책에서 혼선이 생기며 흔들릴 경우 황 대행의 정치적 위상이 크게 올라가 서울시장 선거에 충분히 도전해 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 대행의 정치적 자산을 ‘버리는 카드’로 사용하기보다 보수진영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결정적 카드’로 활용해야 한다는 견해다.
대선 출마 여부를 두고 범보수진영에서 각론을박을 하는 가운데 황 대행은 박 대통령 파면 당한 10일 대국 담화문을 통해 조기 대선에 따른 엄중한 선거 관리를 약속했다. 이를 두고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남상훈 기자 nsh2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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