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물보호 목소리 높아졌으나 동물실험은 증가
지난 2일 동물생산업을 기존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전환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실험실에 갇힌 동물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실험동물과 관련한 동물보호법 조항은 이번에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또한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 화학제품 유해성 논란이 거세지면서 동물실험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14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실험에 이용된 동물 수는 2011년 147만4454마리에서 2015년 200만4447마리로 늘었다. 2015년 기준 마우스(생쥐) 163만39마리, 랫(들쥐) 26만286마리, 기니피그 4만6174마리, 토끼 3만3237마리, 개 3881마리, 원숭이 1177마리 등이다. 이는 의약품, 화장품, 의료기기 업체만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이어서 대학연구실 등 교육시설을 포함하면 실험동물 수는 훨씬 늘어난다. 2015년 국내 의약업계의 실험실에서 태어난 동물은 334만8769마리, 수입동물은 14만8325마리로 수백만마리가 실험용으로 생산되거나 수입됐다.



◆교육기관은 동물보호 사각지대
현행 동물보호법, 실험동물법 등 동물 관련 법은 일단 실험실로 끌려간 동물에게 ‘제2의 인생’을 선사하지 않는다. 실험실로 팔려가거나 그 안에서 태어난 생명은 일평생 몸의 기능을 하나하나 잃어가는 고통을 겪다가 생을 마감한다. 실험동물의 처분과 관련해 동물보호법은 ‘실험자는 실험동물을 처리해야 하는 경우 가능한 정상적으로 회복시켜 살 수 있도록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모호하게 규정하고 있다.
실험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재사용 금지 규정도 없는 상태다. 각 기관에서 동물실험과 관련한 자체 윤리규정을 두고 사용 횟수와 주기 등을 명시한 경우는 있지만 지켜지지 않을 때가 많다.
이와 관련해 수의대학을 자퇴한 한 학생은 인터넷 블로그에 “링거 주사를 놓는 연습을 위해 약 20명의 학생이 강아지 한 마리에게 주사 바늘을 찌르곤 했다”며 “생초보들인 만큼 1명이 3∼4번 찌르면 강아지는 하루에 60∼80번 온갖 혈관이 다 터질 때까지 바늘에 찔린다”고 토로했다.
현재 교육기관에서 이뤄지는 실험은 사실상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현행 실험동물법은 식품, 의약품, 화장품, 의료기기 업체만을 대상으로 식약처에 관리감독 책임을 부여하고 있다. 그 외는 농림축산식품부를 주무 관청으로 하는 동물보호법의 적용을 받는다. 두 기관 모두 교육기관에서의 실험에 대한 관리 권한이 없다.
실험동물법과 동물보호법은 실험기관에 각각 실험동물운영위원회, 동물실험윤리위원회를 설치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지만 초·중·고교에서는 윤리위원회의 감독 없이 담당 교사의 지도에만 의존해 동물해부가 이뤄지는 실정이다.

또 실험동물법은 실험동물의 생산·수입, 판매자만 식약처장에게 등록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실험동물이 공급되는 시설에 대한 규정은 없다. 이 때문에 지난해 6월 비글구조네트워크가 검찰에 고발한 한 유명 수의대학은 약 10년간 무허가 번식장에서 개를 공급받아 학생들의 실습에 사용했지만 처벌받지 않았다.
유 대표는 “국내 수의대학에는 생명윤리를 다루는 교과목조차 없다”며 “동물실험을 무조건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생명 존중의식을 바탕으로 고통을 최소한으로 줄여주고 대체시험 개발을 통해 실험 자체를 줄여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살아있는 토끼 대신 도축된 닭 각막 쓰고 배양된 인간 피부 세포 사용을
‘살아 있는 토끼 대신 도축된 닭의 각막을, 가능하다면 배양된 인간 피부 세포를 사용하자.’
세계적으로 동물실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실험 정확도가 높고 생명 희생이 적은 동물대체시험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부분 동물실험이 1940∼50년대에 개발된 방식을 따르는 경우가 많고 종별·개체별 반응 차이가 커 검증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 사례가 ‘탈리도마이드 사건’이다. 탈리도마이드는 독일 제약회사 그뤼넨탈이 1957년 출시한 임신부 입덧 방지약의 주성분으로, 당시 이 성분이 들어 있는 약을 먹은 여성들은 팔·다리 뼈가 없거나 손발이 몸통에 붙은 기형아를 출산했다. 약이 출시되기 전 쥐와 개, 고양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던 현상이었다.
임 교수는 “아스피린과 페니실린 등은 반대로 인간과 달리 다른 동물에게 치명적 반응이 나타나기도 한다”며 “국제학술지 네이처지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피부 독성은 동물실험의 예측력이 50%도 안 된다”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우리나라도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동물대체 시험 가이드라인을 도입하고 있으나 화장품 등 일부에 국한돼 있고 환경부·농림축산식품부 등 관련 부처들 간에 제대로 된 협의나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범정부 차원의 장기적 정책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5년 시행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이 동물실험의 수요를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화평법에서 요구하는 안전성 평가시험은 대부분 동물실험으로 이뤄진다. 임 교수는 “현행 화평법은 안전성 평가와 관련한 시험의 전체 자료를 요구하고 있는데, 유럽연합(EU)에서 공지한 특정 화학물질의 유해등급을 알면서도 전체 자료가 없어 다시 실험하는 것은 불필요한 낭비이자 소모적인 생명 희생”이라고 지적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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