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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에 희망을!] "잘 될 줄 알았는데…" 취업에 비난에 병들어버린 청춘들

입력 : 2017-03-16 19:29:22 수정 : 2017-03-16 19:2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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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스트레스에 20대 우울증 급증… 취준생 두번 울린다 / 정신건강까지 위협하는 ‘청년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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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는 정말 착한 아이였어요. 공부를 잘하진 못했어도 크게 속 썩이지도 않는 아들이었어요. 가고 싶어 하는 과가 있었지만 대학교는 이름이 조금이라도 더 알려진 곳이 낫겠다 싶어서 소위 ‘인서울’ 인문계열로 진학했죠. 졸업 후 1년 정도는 취업에 실패해도 씩씩했는데 5년 연속으로 계속 떨어지니까 변하더라고요. 답답한 마음에 아버지가 ‘의지가 부족하다’고 한마디 한 게 화근이 돼서 가족 사이도 틀어졌어요. 이젠 취업 준비도 안 하고 게임만 해요. 아들 데리고 같이 상담 오려고 했는데, ‘아들을 정신병자 취급한다’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부리더라고요. 얘가 왜 이렇게 됐는지…”(30대 초반 미취업 아들을 둔 60대 여성 A씨)

# “저는 명문대를 졸업했어요. 집은 강남이고, 대기업 임원을 하셨던 아버지는 지금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계세요. 대학생 때 미국에서 인턴도 1년간 했고, 영어 성적도 좋아요. 그래서 당연히 졸업하면 바로 취업할 수 있을 줄 알았죠. 현실은 아니더라고요. 대기업, 공기업 모두 면접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탈락했어요. 부모님은 ‘강남에서 안 살 거냐’ ‘모든 지원을 해줬는데 다 떨어졌다’ ‘좋은 직장 다녀야 시집도 잘 간다’라며 저를 비난하더라고요. 너무 서럽기도 하고, 앞으로 제 삶이 이전과 같지 않을까봐 두려움이 몰려왔어요. 이런 시간이 지속되니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감정조절이 안 되네요. 이젠 또 우울증 진단까지 받았으니….”(20대 여성 B씨) 

늘어나는 청년실업으로 청년의 마음이 병들어가고 있다.

실업은 단순히 청년들의 경제력만 박탈한 것이 아니다. 병원 정신의학과 등에서 상담을 받은 A씨와 B씨의 사례처럼 사회적 교류 상실, 자존감 저하, 이로 인한 우울증 등 청년들의 정신건강까지 앗아가고 있다. 우울증을 앓는 청년들은 취업한 친구와의 비교가 싫어서, 정신과 상담 기록이 남아서 등의 이유로 모든 대화를 기피하면서 마음의 병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미취업 자녀와의 갈등으로 가족들이 우울증을 앓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빠르게 늘어나는 20대 우울증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실업률은 9.8%로 1999년 통계조사가 시작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0년 7.5%에서 5년 새 빠르게 증가한 것으로 청년실업자는 이제 43만명을 넘어섰다. 청년층의 체감실업률은 22.5%까지 올라갔다.

미취업은 당장 경제적 압박과 연결된다. 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한 흙수저들은 생활비 걱정과 곧 닥쳐올 학자금 대출 상환 등이 큰 부담이다. 한국장학재단에 따르면 지난 한 해에만 신규로 취업후 상환 학자금 대출을 받은 학생은 1만2000명에 육박한다. 대출 잔액도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이 6조7373억원, 일반 상환 학자금대출이 5조2457억원(2016년12월 기준)을 기록하고 있다.


B씨처럼 부모로부터 경제력을 뒷받침을 받는 경우에도 미취업 상태가 길어지면 사소한 말에도 민감하게 반응해 주변과의 갈등을 빚기도 한다.

자치단체 정신건강증진센터와 병원 정신의학과 전문가들은 이런 청년들은 대부분 반복되는 취업 실패 이후 가족과의 갈등, 성공한 친구와 비교를 통한 열등감, 낙오자가 됐다는 좌절감을 차례로 경험하고 인간관계 단절과 알코올·게임중독 등으로 발전한다고 지적한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0대의 경우 사회를 경험해 원숙해진 50대 이상과 달리 현재 본인의 증상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하고 이에 대해 대처하는 능력이 미숙할 수밖에 없다”며 “우울증을 방치할 경우 취업을 하더라도 적응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복되는 취업 실패… 경제적 압박에 자존감 낮아져


이렇게 우울증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20대는 5만명(2015년 기준)을 넘어섰다. 5년 전에 비해 13.6%가 늘어난 수치다. 같은 기간 20세 미만은 15.2%가 줄어들었고, 30대와 40대가 각각 2% 늘어난 것에 비하면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정신과 상담을 받으면 ‘정신병자’ 취급을 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본인의 우울증세를 자각해도 상담을 기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불안감은 청년 세대가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도록 만들었다.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 이선우 연구원에 따르면 다음 세대의 계층 이동 가능성이 낮다고 답한 20대가 10년간(2006∼2015년) 72.4%로 전체 68.1%보다 4.3%포인트 올라간 것으로 나왔다. 자살충동을 경험한 20대의 비율도 8.1%에서 7.5%로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기간 자살충동 경험은 전 세대에서 10.3%에서 6.1%로 큰 폭으로 줄었다.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성세대가 전쟁으로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한국 사회의 왕성한 성장기를 경험한 ‘비전’이 있던 시기를 보냈다”며 “반면 청년들은 불평등한 분배로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있다. 청년에게 절망감을 안기는 것은 지금 당장의 고통 강도와 취업 부재가 아니라 앞으로도 회복되지 못할 것이라는, 희망이 사라진 데 대한 심리적 무력감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홍진표 교수는 “우울증 극복을 위해서는 현재 청년들의 실업이 시대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비슷한 여건의 친구들과 정보를 나누고 상호 격려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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