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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커닝 페이퍼 vs 옥타곤 배틀 …한·미 토론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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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3-16 11:16:57 수정 : 2017-03-30 15: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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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야말로 국민을 대리할 사람의 자질과 능력입니다. 그런 자질과 능력이 있는지 여부를 토론을 통해 국민이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매우 중요한 과정이고, 어쩌면 정당정치, 민주주의의 꽃일 것입니다. 실제로 정해진 질문을 준비하고, 참모들이 써준 것을 읽는 게 국민이 판단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국민이 그 사람들이 무슨 행각을 하고 있는지, 진정한 내심의 뜻이 무엇인지 무제한 토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게 좋을 것입니다.” 지난 14일 열린 더불어 민주당의 3차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이재명 성남시장이 던진 말이다.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선거 경선 후보들이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첫 공중파 TV 합동토론회를 갖기에 앞서 서로 손을 마주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성 고양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문재인 전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국회사진기자단
◆미리 써온 답안지 읽기 경연

오는 5월 9일 실시되는 올해 대통령 선거에서 대선 주자 간 텔레비전 토론은 그 어느때보다 중요하다. 유권자가 후보를 검증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TV 토론이 후보 검증의 유용한 수단이 되려면 후보 간 토론다운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선 주자 TV 토론은 학예회(이 시장 표현) 수준이다. 이 시장이 지적한대로 대선 주자들은 자신의 발언 차례가 오면 참모들이 써준 ‘커닝 페이퍼’를 책상 앞에 펴 놓고, 고개를 푹 숙인채 초등학생이 국어책 읽듯이 숨가쁘게 읽어댄다. 

더불어민주당의 첫 지상파 대선 주자 토론회는 90분 동안 진행됐다. 이 중에 절반이 넘는 50여 분 동안 후보들은 미리 준비한 원고를 내리 읽었다. 일종의 자유 토론인 ‘후보자 주도권 토론’은 36분에 불과했다. 한 후보가 9분 안에 3명의 후보를 상대로 질문을 하다보니까 주고받기 식의 실질적인 토론이 이뤄지지 않았다. 더욱이 토론 초반부에 두 후보가 30초 간 묻고, 40초 간 답하는 코너는 마치 단답식 시험처럼 후보자의 식견이나 정치 철학을 확인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실익없는 ‘끝장 토론’ 논란

안희정 충남지사는 후보 간 1대1 끝장 토론을 공식 제안했다. 첫 토론은 문재인 후보와 안 지사가 하자고 했다. 이재명 시장도 문 후보에게 끝장 토론을 수용하라고 촉구했다. 최성 고양시장은 “왜 저만 빼고, 두 분만 문 전 대표와 끝장 토론을 하자고 그러냐”고 안 지사와 이 시장을 타박했다. 토론자가 많을수록 토론의 초점이 흐려지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선두 주자는 역전의 빌미가 될 수 있는 끝장 토론을 피하려드는 게 일반적이다. 정치와 선거 무대에서 정치인이나 후보자가 자신보다 센 사람과 맞붙어 싸우는 게 자신의 체급을 높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이다. 이 때문에 지지율 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문 전 대표가 1대 1 끝장 토론에 응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미국은 대선 주자 토론의 효용성을 높이기 위해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TV 토론에 참여할 수 있는 후보자의 숫자를 줄여 나간다. 지난 2016년 대통령 선거의 공화당 예비 경선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해 대선 주자가 16명에 달했다. 공화당은 이 때문에 지지율 기준으로 1부 메이저리그와 2부 마이너리그로 나눠 토론회를 진행했다. 토론회가 거듭되면서 메이저리그 참가자 숫자를 줄여나가고, 마이너리그 토론 직후 실시한 조사에서 1위를 한 후보는 메이저리그로 올려줌으로써 공정성을 담보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최성 고양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문재인 전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왼쪽부터)가 지난 14일 오후 여의도 KBS 본관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경선 방송사 합동토론회에 앞서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앉아서 읽기 대회 VS 서서 토론하기

한국의 대선 주자 토론회에서 후보자는 커다란 탁자를 앞에 놓고, 의자에 앉는다. 후보자는 참모들이 미리 준비해준 두툼한 커닝 페이퍼 보따리를 그 책상 위에 그득하게 올려 놓고, 문제가 바뀔때다가 이 커닝 페이퍼를 뒤진 뒤에 이것을 줄줄이 읽어대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한다. 

미국의 대선 주자 토론에서는 후보자가 선 자세로 토론을 벌인다. 특히 민주당과 공화당의 당내 경선에서는 거의 예외없이 후보자가 서서 토론을 한다. 다만 양당의 후보가 확정된 뒤 대선후보토론회가 주관하는 3번의 본선 TV 토론에서는 후보자가 2번은 서서 토론하고, 한 번은 앉아서 한다. 서서 하는 토론회 중 한 번은 타운홀 미팅 형식으로 진행돼 후보자에게는 상대 후보가 발언할 때 잠시 쉴 수 있도록 간이 의자가 제공될 뿐이다.

미국의 TV 토론에서 후보자가 앉아서 토론을 할 때에도 한국 식으로 커닝 페이퍼를 미리 준비해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미국에서는 커닝 페이퍼가 없기 때문에 후보자의 국정 현안에 대한 이해 능력을 정확하게 검증할 수 있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선두 주자였던 릭 페리 당시 텍사스주 주지사는 3개 부처를 폐지하겠다고 공약했고, 그 대상을 열거하면서 “교육부, 상무부 그리고 가만 있자. 세번째가 어디더라, 모르겠네. 미만해요. 아이고! (Opps)”라고 답변했다가 ‘웁스 후보’로 낙인이 찍히고, 즉각 선두 자리를 뺐겼다. 지난해 공화당 후보 경선에서 트럼프를 맹추격하던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은 토론회때마다 미리 외운 답변을 자구 하나 틀리지 않게 그대로 몇 번 반복했다가 ‘준비가 덜 된 후보’로 몰려 고꾸라졌다.

◆질문 미리 알려주는 한국 VS 질문 알 수 없는 미국

한국의 정당 대선 주자 토론회는 당 선거관리위원회가 공식 주최하고, 주관 방송사와 톤론 주제, 사회자, 규칙 등을 협의한다. 이 때문에 언론사는 토론회의 들러리에 불과하다. 언론사가 아니라 당 선관위가 미리 질문서를 만들어 ‘친절하게’ 후보자에게 알려준다. 마치 시험 문제를 미리 알려주고, 답안지를 작성해와 토론회장에서 읽으라는 식이다. 후보자가 짐작하지 못한 ‘송곳 질문’이 나와 당황하는 일이 없다.

미국 대선 주자 토론에서 후보들은 사전에 질문을 알 수가 없다. 텔레비전 토론회를 주관하는 방송사 등이 후보자 측을 철저히 배제한 채 질문을 준비한다. 더욱이 타운홀 미팅 형식의 토론회에서는 참석자가 어떤 질문을 할지 방송사도 알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CNN 객원 해설위원 대나 브라질은 CNN이 주관한 타운홀 미팅 형식의 민주당 TV 토론에서 미리 참석자의 질문을 알아내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알려주었다가 즉각 해임됐다. 미국에서 TV 토론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채 후보자가 옥타곤에서 맨몸으로 싸우는 종합 격투기이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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