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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만난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안진걸(45) 공동 대변인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 파면을 이끌어 낸 촛불집회 대장정을 이같이 평가하며 “국민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지난해 10월27일 평일에 처음 열린 촛불집회는 장장 134일간 진행됐다.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이 나온 다음날인 지난 11일 20차 주말 집회를 끝으로 정기적인 집회는 마무리된 상태다. 이 기간 동안 전 국민의 3분의 1에 가까운 1600만여명(주최 측 추산)이 광장으로 나와 촛불을 밝혔다.
지난 4개월여간 촛불집회를 주최해 온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안진걸 공동대변인이 17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갖고 “(촛불집회 참가자들과)같은 국민이란 사실이 고맙고 자랑스럽다”고 말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
그는 비폭력·평화 촛불집회의 공을 온전히 국민들에게 돌렸다. 집회·시위 문화가 잘 정착돼 있는데다, 국민들이 박근혜 정권과 비호 세력에게 반격의 빌미를 주지 않으려 평화 기조 아래 똘똘 뭉쳤다는 것.
지난 4개월여간 촛불집회는 국민들의 후원으로만 이뤄졌다. 안 대변인은 “현장 모금 참가자는 너무 많아 헤아릴 수 없고, 온라인 모금에는 10만여명이 참여했다”며 “퇴진행동이 1억여원의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단숨에 빚을 갚고도 남는 후원금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날 퇴진행동은 “지난 15일부터 3일간 2만1000여명이 8억8000여만원을 후원했다”며 “또 한 번 시민의 힘을 봤다”고 감사를 표했다. 퇴진행동은 이 후원금을 오는 25일과 다음 달 15일 예정된 집회 진행 비용으로 쓰고, 그래도 남으면 국민들과 협의해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 등 좋은 곳에 기부할 계획이다.
안 대변인은 특히 ‘광장’이 열린 점을 촛불집회의 중요한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백남기 선생이 물대포를 맞고 돌아가신 건 경찰이 (시위대가)광화문광장으로 못 가게 했기 때문”이라며 “지난해 11월5일 2차 주말 집회를 광화문광장에서 할 수 있게 되면서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대규모 집회가 별 탈 없이 진행된 데는 무엇보다 퇴진행동이 적잖은 역할을 했다. 퇴진행동은 안 대변인이 공동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참여연대를 비롯한 2400여개 시민·사회 단체로 꾸려져 촛불집회를 주관해 왔다. 집회 신고는 물론, 무대와 음향, 조명을 설치하고 행진 경로를 짜 안내하는 모든 실무적인 업무가 퇴진행동의 몫이었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들이 경찰의 행진 금지 통고에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등을 제기해 사상 첫 청와대 100m 앞 행진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지난해 12월3일 6차 주말 집회에서 청와대와 약 100m 떨어진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까지 행진이 처음으로 이뤄졌다.
안 대변인은 “국민들이 그래도 시민·사회 단체들이 집회를 무난하고 안전하게 운영해 줬다고 신뢰해 모금이나 자원봉사에 많이 참여해 주신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물러났지만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직을 유지하면서 박근혜 정권 퇴진은 완전히 실현되지 않았다는 게 퇴진행동의 입장이다. 이 연장선상에서 퇴진행동은 촛불집회의 2차 목표인 좋은 정부로의 정권 교체에 기여하고, 오는 5월9일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5월 셋째 주에 해산한다. 또 촛불집회의 모든 기록은 백서로 낼 계획이다.
안 대변인은 “대선이 끝나면 퇴진행동은 해산하고 그간 해왔던 대로 각자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할 것”이라며 “새 정부가 촛불혁명 정신을 계승해 제대로 된 개혁에 나서는지 감시하고 견제하는 기구를 만들지는 별도로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안 대변인은 경찰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해서는 쓴소리를 쏟아냈다. 그는 “스웨덴에는 ‘대화 경찰’이라 해 집회·시위를 도와주는 경찰이 있다”며 “경찰은 집회·시위 관리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이어 “선관위는 촛불집회를 단속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며 “오는 25일, 다음 달 15일 촛불집회에서 박근혜씨 수사 과정이나 탄핵 이후 상황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는 국민이 있으면 얼마든지 말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안 대변인은 “촛불혁명은 헬조선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다”며 “촛불혁명은 민주주의가 동네와 지역, 직장에 깃드는 일상의 혁명으로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를 위해 안 대변인은 국민들에게 시민·사회 단체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당부했다. 그는 “노르웨이는 전 국민의 5분의 1이 국제앰네스티 회원인 덕에 국가 권력이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발생할 수가 없다”면서 “앞으로도 시민·사회 단체들이 더 좋은 나라를 만드는 데 앞장설 테니, 국민들에게 단체 가입하는 게 어떠시냐고 권하고 싶다”고 인터뷰를 끝맺었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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