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배우 김민희와의 불륜설이 나온 후 지난 13일 공개석상에서 이를 인정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2015)에서 함춘수(정재영 분)가 윤희정(김민희 분)의 그림을 보고 나서 던진 평이다. 남녀 주인공의 애정관계를 살짝 비틀어놓은 이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건지, 아니면 그 반대이거나 둘 다 맞는 것인지’를 놓고 서로 다른 가치판단을 하게 만든다.
지난 6일 밤 C-17 수송기에 실려 오산 공군기지에 도착한 사드 발사대. 주한미군 제공 |
탄도미사일 요격 시스템 1개 포대가 배치되는 것을 놓고 당사국과 주변국들의 시각이 이처럼 극명하게 엇갈리는 경우는 전례가 없다. 2000년대 초 미국의 미사일방어(MD) 편입 대신 독자적인 미사일방어체계를 구축하기로 결정했을 때와 그린파인 탄도탄조기경보레이더 및 패트리엇 요격미사일을 도입했을 때,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를 구성할 M-SAM/L-SAM 개발에 착수했을 때, 주한미군이 PAC-3를 배치했을 때 침묵하거나 소극적 반발만 하던 중국이 사드 배치에 경제보복까지 하는 모습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고 외치는 느낌이다. 왜일까.
◆ 사드는 한중 전략적 균형 영향 미치지 못해
야간 요격능력을 점검하기 위해 시험발사되는 사드 미사일. 록히드마틴 제공 |
한국과 중국의 군사력은 사드 1개 포대만으로 그 우위를 역전시킬 수 있을 정도로 격차가 작지 않다. 2016 국방백서에 따르면, 중국은 병력 233만명과 전투기 1588대, 항공모함 1척과 잠수함 65척 등 870여척의 함정을 보유하고 있다. 핵무기를 운반할 수 있는 사거리 1만3000km의 둥펑(DF)-5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사거리 7000km의 DF-31 등 중장거리 탄도미사일로 무장한 제2포병을 운용하고 있으며, 전략핵잠수함 4척은 사거리 8000km 이상인 쥐랑(JL)-2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운용한다. 62만 병력과 690여대의 항공기, 160여척의 함정, 200여개의 미사일발사대를 보유하고 있는 한국은 군 전력에서 중국에 큰 열세를 보이고 있다. 사드 1개 포대가 배치돼도 이같은 열세는 달라지지 않는다.
시험발사되는 한국 공군의 PAC-3 요격미사일. 공군 제공 |
◆ 핵심은 미중 패권 경쟁 “中 레이더 포위 저지”
2014년 림팩 훈련에 참가한 중국 해군 프리깃함. 미 해군 제공 |
미중 패권 경쟁은 군사적, 지정학적 분야의 투 트랙으로 진행된다. 군사적 측면에서는 재래식 전력 증강도 치열하지만 핵전력을 둘러싼 양국의 보이지 않는 기싸움도 여전하다. 중국은 1960년대부터 핵개발에 착수해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와 함께 핵보유국 지위를 확보했지만 실질적인 능력은 매우 취약하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다탄두화는 미국, 러시아에 비해 뒤쳐져 있으며, 신속한 발사를 위해 반드시 확립해야 하는 고체연료 엔진 기술의 안정화도 부족하다. 핵탄두 숫자도 미국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미사일로 발사 가능한 260개의 핵탄두를 갖고 있다. 반면 미국은 1370개의 핵탄두가 실전배치되어 있고 6500개를 비축하고 있다. 미국의 핵공격에 맞설 수 있는 최소한의 억제력 확보도 벅찬 실정이다.
미국이 중국을 공격할 강력한 ‘창’에 중국의 반격을 저지할 ‘방패’까지 갖추면 중국의 핵 억제력은 마비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에 배치될 사드 레이더는 중국 동북지방에서 미국 본토로 날아가는 ICBM을 탐지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 국방부가 아무리 부인해도 사드가 미국 미사일방어시스템의 일부라는 점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한반도 사드 배치를 용인하면 중국 주변의 미국 동맹국들이 지금보다 더 발전된 미사일방어망을 구축하거나 미군 방공포대의 주둔을 허용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SM-3와 PAC-3로 미사일방어망을 구축한 일본은 사드 도입을 검토하고 있으며, 한국도 북한 미사일 요격을 위해 2~3개 포대를 추가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학계와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제 데이터링크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어 유사시 한미일 3국이 미사일 관련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여기에 호주, 대만까지 연결되면 중국을 포위하는 진주 목걸이 형태의 미사일방어망이 구성된다. 이는 중국 핵 억제력의 종말을 의미한다.
문제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며 어느 한쪽으로 쏠리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필리핀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 직후 중국으로부터 무기를 지원받고 경제적 투자를 이끌어내는 등 실리를 챙기고 있다. 미국과도 연합훈련을 지속하면서 일본으로부터 정찰기와 순시선을 지원받았다. 이같은 ‘양다리 행보’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인도, 파키스탄 등 남아시아 지역도 비슷한 처지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확실하게 자기편으로 만들지 못한 미국과 중국은 동아시아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는 일본, 대만과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북한으로 갈라진 동아시아에서 미중 패권 양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나라는 한국이다.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었으며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한국이 어느 쪽에 서느냐에 따라 동아시아 정세가 달라질 수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사드의 한반도 배치는 한중 관계를 멀어지게 하고 한국을 미국과 더욱 가깝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 탄도미사일로부터 주한미군과 한국 내 자국민을 보호하면서 한국을 중국으로부터 떼놓는 정치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중국 입장에서는 미사일 요격 시스템에 의한 포위망 형성의 신호탄이 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
2015년 9월 중국 전승절 행사에 등장한 DF-31 탄도미사일 |
확실한 것은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를 무대로 충돌하는 상황에서 권한대행 체제에 돌입한 한국은 이 땅의 주인이면서도 중국의 압박을 견뎌내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점이. 사드는 정치적 함의가 가득 담긴 ‘국제정치학적 패키지 세트’다. 미중 패권다툼의 도구가 된 사드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가의 문제는 관료가 아닌 조기 대선 체제에 돌입한 정치권의 숙제로 남겨질 공산이 크다. 인수위가 없는 차기 정권이 사드 문제를 풀어나가며 한반도 평화와 경제적 이익을 모두 지킬 수 있는 정략을 지금부터 구상해야 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