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내부에서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구속수사를 해야 한다’는 강경 기류가 감지되는 가운데 ‘대선 국면에서 특정 후보에게 유리 또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찮아 검찰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이날 박 전 대통령 소환조사 내용을 보고받은 뒤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깊이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총장은 ‘일선 수사팀 의견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입장을 유지하면서 검찰의 오랜 관행에 따라 박성재 서울고검장 등이 참석하는 전국 고검장 회의를 열어 토론하는 방안, 검찰 원로인 전직 검찰총장들의 견해를 수렴하는 방안 등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수남 총장의 선택은… 역대 네 번째로 전직 대통령이 검찰에 불려 나온 21일 김수남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
박 전 대통령 측에 430억원대 뇌물을 준 혐의로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미 구속기소돼 1심 재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범죄에 가담한 전직 청와대 수석·비서관, 장·차관 등이 줄줄이 구속된 상태다. 검찰이 박 전 대통령을 비선실세 최순실(61·구속기소)씨와 나란히 뇌물 혐의 공범으로 못박은 상황에서 영장 청구는 당연한 수순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박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를 포함해 총 13가지 범죄 혐의를 받고 있고 헌법재판소도 파면 결정을 내리며 일부 사실관계를 인정했다.
다만 오는 5월9일로 예정된 대선에 미칠 영향과 정치권 일각의 박 전 대통령 동정론은 김 총장의 결단을 고심하게 만드는 요소다. 검찰이 야권에 유리하게 수사를 진행함으로써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했다는 시비가 불거질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박 전 대통령의 진술 태도가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박 전 대통령이 이미 구속된 핵심 관계자들의 진술 등을 모두 무시하며 부인과 ‘모르쇠’로 일관했다면 구속수사로 가닥이 잡힐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 경우 검찰은 박 전 대통령 조사 내용과 상관없이 이미 확보한 안종범(58·〃)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과 정호성(48·〃)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휴대전화 녹음파일 등 핵심 증거물을 바탕으로 영장을 청구할 가능성이 크다.
법원은 사안의 중대성이나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 등을 기준으로 영장 발부 여부를 판단한다.
박 전 대통령이 연루된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은 사안이 중대하다는 점에 대해 이견이 없는 상태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의 범죄 혐의 입증에 필요한 증거 수집이 이미 거의 끝났다는 점에서 증거인멸 우려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온 국민의 이목이 박 전 대통령의 서울 삼성동 사저에 쏠린 상황에서 도주 우려 또한 없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앞서 검찰에 소환된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5년 40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으로 대검 중수부 수사를 받은 뒤 구속됐다. 같은해 12·12 군사반란 등 혐의로 검찰 소환 통보를 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이에 응하지 않고 버티다 결국 검찰에 구속됐다. 2009년 ‘박연차 게이트’로 검찰 수사를 받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소환조사 후 검찰이 3주일 넘게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검토하자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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